편지 하나

** 누나 읽어 보았습니다.

저, 메일 받았는데요 . 반송이 되었었나요?
B 형은 같이 살고는 있으나 , 제가 별로 아는게 없으니 직접 소식을 들으시는게 누나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줄 같네요.  ^^

사실 첫번째 메일을 받고 몇자 끄적끄적 했었는데요 . 수업시간 전이라서 마무리도 못했고 입장이랄까 이런것도 애매하고 해서 어딘지 모르지만 드래프트박스에 들어가버렸던 같습니다. 추수감사절이라 도서관도 문을 걸어 잠그고 저도 별로 "" 하고 싶지 않으므로 느낌들을 풀어 놓아 볼까 합니다. (솔직히 좀 어설프게 마신 술기운이기도 합니다. 초롱초롱해져서..ㅎㅎ)

첫번째 메일을 받고 제가 쓰던 메일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 결정" 이다라는 였던 같습니다. " "이라는 앞에 "차라리" 혹은 "결국은 " 자리다툼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다시 생각해보니 둘다 차이를 만들지는 못하겠더군요.


세미나
계획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저도 관심이 있는 주제이긴 한데요 .
굳이 제  관심의 단편을 꺼내보인다면 , 같은 경우에는 Properties 자체에 보다 관심이 몰려 있는데 , 기본적으로 소유물이라는 사물의 특정 형식이 사물과 권리의 표상으로서 존재한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구요. 중첩되는 권리 효과 ( 심지어는 사물 자체의 존재적 조건으로서의 권리) 비밀은 독특한 존재적 형식에 끊임없이 기입된다는 가정때문입니다. 권리 행사의 매개였다가 권리보증의 기표였다가 권리 충돌의 장이기도 하니까요 . 보다 직접적으로 저는 상품의 형식으로써 소유물에 접근해보고 싶은 것인데, 그것은 교환가능성 , 다시말해 최소한의 가치생성의 가능성을 전제로 해서만이 소유감각 내부로 사물의 정렬이 이루어질 것이다는 가정때문입니다. 환경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것이아닐까 싶습니다만.


다른
관심은 하나는 " "라는 관념 혹은 감각에 대한 것인데요 . 그것이 사회적으로 "잉여 "라는 일시적 우연적 상태와 " 과잉"이라는 지속적 욕망의 순환이 교차하는 영역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물론 삶과 세계에 대한 윤리적 담론들 또한 스며들기도하구요. 그러니까 "가진 없어도 마음만은 부자 " 부터 "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 까지 자체를 대상적(소유물을 통해) 으로 구축하는 어떤 논리들에 대한 관심이지요. 부의 규준이   소유물의 총량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자본주의적 딜레마에 대한 관심이기도 합니다. 저도 개념적으로 최근 수업들과 몇몇 최근 맑스주의 독본들을 통해서 새로 관심을 갖게된 것이라 더이상 설명하는 것은 감당이 안될 같네요.

지난 여름에 베트남에 있을 포드재단이 후원한 "배급경제의 시대" 라는 전시회에 갔었는데요. 맑스가 제창한 사적소유의 철폐를 집단적소유로의 대체로 밖에 이해하지 했던 제한적 상상력의 역사는 결국 삶이 항상 위대하다라는 눈물나는 휴머니즘의 반복이더군요. 그런데 재밌는 것은 시기를 힘들고 암울하게 묘사하고 현재의 이른바 " 시장경제체제" 긍정하면서도, 내러티브 내부에 이질적으로 스며있는 "공유" 대한 향수 그리고 그것을 통한 현실부정이었지요. "그래도 그때는 내것 니것이 없었다" 라던지 "가진자 없는자라고 해서 지금 처럼 나뉘지 않았다"같은 이야기들 속에 말이지요 . 그런 향수는 어떤 의미에서는 물론 현재의 삶에 뿌려 향기나는 향수이기도 합니다만, 저는 신경증이 도지던데요 .사실 베트남의 경우에 배급경제 내부에 50 여개의 배급 차등 등급이 있었고 , 하여 부의 차등이 오히려 철저하게 구조적으로 행해졌던 것이었으니, 그때는 내것 니것이 없었다같은 말은 그들이 테레사 수녀였다가 지금은 집문을 이중 삼중으로 잠그고도 밤잠을 설치는 아줌마가 되었다고 자성하는 것이 아닌이상, 사실 별로 특별한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성찰성의 외재 화랄까. 오히려 " 동란 " 기억하는 한국의 내러티브들과 겹쳐놓고 보면 삶의 비정상성( 현실에 파악되는 ) 대한 일시성과 찰라성에 대한 도덕적 자위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벤야민이 언급한 "좌파 멜랑꼴리아" 동종이상에 다름 아닌 같구요. 결국은 어떤 수준에서 사회주의 배급경제는 소유감각을 흐트러 놓는데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얼마간 성공했으나 새로운 소유감각 혹은 반소유감각을 생성하는데는 실패했고 , 어미를 뺏어가면 근친상간은 안일어 것이라는 류(국유화)의 정치적 실험을 상당히 진지하고 고통스럽게 했던 셈이죠.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A형
글에 대한 **누나의 자세한 논평 보았습니다 .

제가 틀리지 않다면, 지난번 학회에서 발표한 글의 연장선상에 있는 같네요.

제가 기억하기엔 술자리에서 A형이 이글을 특수한 목적-한국역사연구회 였나보군요- 위해 글이라고 했던 같습니다 .

제가 글을 읽기는 힘들 갈구요. 물론 노력하면 안될 것이야 없습니다만, **누나가 자세한 발제겸 평을 해주신데다가, 안타깝지만 제가 범접하기 녹녹치 않을 같기 때문에 지금은 제가 전에 발표문과 발표를 보고 느꼈던 점들만 간략히 덧붙이고자 합니다.

**누나완 다르게 저는 사실 A형이 충분히 아줌마들 사이에서 명사가 있을 것이다고 생각하는데요. 튼실한 허벅지 때문이 아니라, 순진하게 들리겠지만 요즘 주말 농장도 가고 아이들 데리고 생활사 박물관 민속박물관가는 교육받은 전업주부들도 (아줌마가 그런 뜻이라면 ) 많으니까 말이지요. 사실 A 글은 형이 의도했건 아니건 간에 "식민지 조선식 막모관행 " 행하고, 보고 싶은 현재적 욕망에 아주 폭넓게 열려있는 것도 같습니다 . 정조식과 막모가 뭔지도 모르는 저같은 사람의 지적 빈곤의 유희도 있으니까요. 사족이지만, 네이버에서 정조식을 치면 제법 자세한 하지만 알다가도 모를 설명이 나옵니다. 한데 막모를 치면 북한어로 "허튼 " 라고 간략히 나오더군요. 북조선에서 조선식 농속의 하나인 막모를 " 허튼" 모라고 불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한자가 다를지도 모르겠군요.(한자가 같다면 참으로 재밌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여간 그것을 보고 나니 뭔가 이해의 고리가 꼬여버렸네요.
다시 돌아가서 , 재미나 관심의 문제가 소재나 주제적으로 A 글에 없는 것은 아니지요 . 그런데 뭔가 독자들의 접근에 문제가 있다면 아무래도 **누나가 지적한 부분들이 타당할 합니다 . 학회지에 실릴 글이기 때문에 여러 형식적 "관행의 제약" 있었겠습니다만 , 어쨌든 생각에 이영훈, 박섭등 "닫힌 일반 논리와 적들 " 형의 논리를 알리는 효과와 더불어 형의 대중들- 학회의 있을 동조자들과 잠정적 아줌마 독자들로 이어질- 적극적으로 생산하려는 쥐불놓기 시도가 약하달까요. 그러니까 사실 독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청자의 입장에서 말해 보자면, 식민지 시기 정조식 장려와 막모관행의 충돌이 자체로서 그리고 현재적 이해의 지점에서 결정적인가라는 물음을 안고 빨려들어갈 지점이 강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지요 . 아마도 그것은 제목이 지나치게 서술적인 탓도 얼마간 있는 같습니다. " 사이", "충돌" 지나치게 관계론적인 함의가 내포되어 있어서 저간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요즘말로 "낚시 " 힘든 같네요.


"과문"하고 글도 안읽은 상태에서 선무당 짓을 좀 해보자면,
"농속" 이라는 것은 농업() 관행의 다른 말인가요? 그리고 구체적 표현은 농업기술로 대표되는 것인가요 ?

느낌에 농업기술과 토양 (지리) 대한 관계를 중심으로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 형의 논지에서 핵심적인 같은데요 . 한편에서는 지나치게 농민을 특정기술과 불가분의 관계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농속" 지리 , 역사의 관계로 이해될 여지가 있는 같습니다.

농업기술이 농업기술 자체의 역사와 지리적(토양적?)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아주 흥미로운 관점을 시사하는데요 . 흔히 듣는 말로 , "땅은 거짓말을 안한다 "는데, 그럼 농업기술이 거짓말을 하거나, 그도 아니면 농민이 농업기술을 이해하거나 활용한 것일 텐데 식민지 조선 농민은 토지에 대한 자기 지식을 자원화 있었다는 상황이 결국 막모 잔존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인가요?

그런데 정치적 입장에서 막모의 잔존이 식민지 농업기획 나아가 식민화의 실패의 증거로 말해지는 것인가요? **누나가 정리 글에서 보면 "완전히 식민화 시킬 없는" 이라는 표현이 나오던데요. "식민주의가 식민지를 완전히 식민화 시킬 없는"이란 문구가 의미하는 바를 모르겠습니다. "완전한 식민화" "내선일체" 갖은 것을 의미하는 것도 같은데 , "내선일체" 특수한 식민지 전략으로 이해되는 편이 낫지 않은가요 ?

그리고 이건 상상입니다만 , 제초기 보급 이야기로 보아 오히려 일본의 정조식 보급과 증산 계획 자체의 차질론도 있을 같은데요. 농민의 저항이라기 보다는 말이지요. 아마도 일본 보고서, 자료들은 대개 그런 관점에서 쓰여지지 않았을까도 싶고 하여 오히려 제초작업의 고단함과 번거로움이 (자료에서는 아닌것 같습니다만 ) 정조식을 수용하는데 저항감을 만들었던 것은 아닌가요? 

또 **누나가 정리한 글에 보면 농민의 " 실용적 합리성 "이라는 말이 나오던데요 . 저도 그에 대한 입장은 **누나랑 비슷합니다 . 말이 이상하지만 농민은 실용적일 있지만 합리성은 항상 외부적인 개입에 의한 정당화를 수반하는 아닌가요?  제가 우려하는 것은 어떤 합리적 개인 혹은 합목적적 경제활동에 대한 신화의 부활입니다. 생산의 비합리적 가능성-사실 항상 생산은 그렇습니다만 - 대한 사고폭이 닫히는 느낌이어서 말입니다 .

오랫만에 한글로 글을 썼더니 무지 힘드네요. 미국에서 영어로 글을 써서 글을 못쓰는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글을 원래 쓰는것이었네요.

**누나가 공유해주신 고맙습니다 . 어쨌든 덕에 저도 뭔가를 써야했고 쓰고자 했으니까요.

A형 나중에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겠습니다 . 항상 그렇듯 여러 생각할 여지들을 제공해 주는 글이네요. 생각에 인류학회지 판본으로도 한번 재구성해보심도 괜찮을 같습니다 . 자유롭게 이론적 문제들을 제기해 수도 있을 같은데요. 이야기가 다릅니다만, 인도에서 Green Revolution 이라는 기획의 성패를 두고 현지 학자, 미국, 영국 학자 요즘 말도 많은 재프리 삭스등등해서 이래저래 논쟁들이 오가던데요. 이영훈류의 입장에서 보자면 산미증산계획같은 것이 그런 류의 식민지 기획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도 싶더군요 . 끝까지 사족입니다.


모두들
건강과 건투를 빕니다 .

P.S.

** 허걱, 막상 보낼려고 했더니 A형 장문의 답글을 이미 보내셨군요 .

그냥 개인 소장 하려다가 보냅니다.

제글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봐 주세요..A 답글도 아직 읽은 상태인데 나중에 읽어보겠습니다. 굳이 글에 답글을 달지 않으셔도 됩니다 . **

** 잠깐 읽었는데요 . .. A형은 지리를 기후로 봤던 것이었군요. 글을 읽어봐야할까 봅니다. 저는 토양으로 이해했었습니다만….. 기후로 보는 것이 농속의 입장에서는 훌륭한 관점일 있겠네요. 한데 근대 기상관측이 20 세기 초에 시작되니까 기후 차이에 대한 이해는 얼마간 보정될 있는 것도 아니었을까도 싶은데요 . 저는 자기땅은 자기가 안다 그런 농민과 농토와의 친밀도로 구성된 지식체계의 문제로 이해했었습니다…**



어쩌자는 것일까?

일을 피해 낮잠자다 소가 되었다는 게으른자의 이야기가
도덕책에 있었을 게다. (생각해보면 도덕책 참 재미난 책이다. 여러모로.)

기말 전장에 들어섰는데, 며칠 째 태업중이다.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수입산인지 천성산(도룡뇽 생존권이 문제인 그산 말고!)인지.
도대체 어쩌자는 심사인지 궁금한 녀석이 되어가고 있다.
꼴에 벌써 입술 가장자리에 헤르페스 발진이 나타났는데,
남들이 보면 과로하신 몸뚱이시나, 증상은 내용의 존재를 표현할 뿐 내용은 아니므로,
며칠내 운명의 사제 "배째시오"가 강림할 것은 분명 할 듯.

"그나저나 이것이 공부 하는 놈의 책상이냐?" 어머니의 잔소리가 환청으로 들려온다.

꼴림에 대하여 / 함순례

시의 언어는 조리개를 최대로 조이고도 빛의 풍부함을 잃지 않는 어떤 맛이 있다.

일어서는 것들과 젖은 것들에 대한 찬미는 삶을 쓰다듬고 싶어하는 욕망의 외침이다.  



꼴림에 대하여
/ 함순례


개구리 울음소리 와글와글 여름밤을 끌고 간다
한 번 하고 싶어 저리 야단들인데
푸른 기운 쌓이는 들녘에 점점 붉은 등불 켜진다

내가 꼴린다는 말 할 때마다
사내들은 가시내가 참, 혀를 찬다
꼴림은 떨림이고 싹이 튼다는 것
무언가 하고 싶다는 것
빈 하늘에 기러기를 날려보내는 일
마음 속 냉기 당당하게 풀면서
한 발 내딛는 것


개구리 울음소리 저릿저릿 메마른 마음 훓고 간다
물오른 달빛 안으로 가득 들어앉는다


꼴린다, 화르르 풍요로워지는 초여름밤

주체성의 철학?

What doesn't kill us makes us stronger.
- Friedrich Nietzsche

푸코의 생체권력도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사람들은 그전에 그것이 자신을 죽일지 아닐지를 알고 싶어한다.

Will-to-know then? huh?

영어로 글쓰기.

근 3주째 밤을 새우고 있다.
두개의 페이퍼를 써야한다.
이른바 exegetical paper. 지난 학기에는 그 exegetical 에 대한 감이 없는 관계로,
넌 무슨 뻘짓을 두페이지에 걸쳐서 했냐는 코멘트를 받았다.
나는 그 두페이지를 고안하고 배치해내느라 한 2주 걸렸었다.  

영어로 글을 쓴다는 건, 그러니까 다른 언어로 글을 쓴다는 것은 특히나
사고와 글쓰기의 사이에 존재하는 억압적 어휘 그리고 문법 구조을 지난하게 통과해야하는,
낮은 포복 질이다.

가끔은 패도 안 맞는 화투패를 자꾸만 섞고 있는 듯한 느낌이고,
부족한 레고 블럭으로 탑쌓기를 하는 느낌이다.

......젠장....  

2006년 월드컵 한국팀과 한국에 대한 단상.

나는 축구 팬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운동중에 축구만큼 싫어하는 운동이 없다고 말하는게 옳다.  
많은 사람들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싫어한다는 우스개소리를 빌어보자면,
나는 "군대에서 축구했던 기억만 큼" 싫었던 것이 없다.
"전투 축구"
매주 2회씩. 그 시간은 내게 악몽이었다.
차라리 통신대 교환 근무를 서거나 방위가 사라진 주말엔 식당에서 밥 준비를 돕는것이 더 나을 정도였으니까.

다행이 운발은 좀 있어서, 롯데 자이언츠 광팬인 부대장이 새로 오고-고맙다 강릉 간첩단!-나도 제법 "짬밥"을 먹은 후로는
축구를 야구로 대체할 수 있었다.
이름하여 "전투 야구"의 시기.

역시 권력을 쥔자 세상의 문법을 바꾼다. 
그러나 그것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겨울엔 땅이 얼고, 낡은 장비들은 재미를 감하는 결정적 요인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야구는 대중화에 결정적 한계가 있는 운동인 듯. 20세기 초기 YMCA 야구단은 마치 요즘 듀크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라크로스 선수단 수준 아니었을까?

어찌 되었던 "사커-포비아"인 내가 이번 월드컵 만큼은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다.
알아듣기 힘든 베트남 방송보다는 "조선중앙 통신"급 축구 중계가 더 나았으니까.

각설하고,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은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본선진출이 목표였던 시기에 비하여 괄목할 만한 성장이지만, 어쨌든 실패는 실패다.

문제는 지고 나서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의 아쉬움의 자리에 있다.
스위전에서 두번째 골이 오프 사이드였다는 이야긴데,
오프 사이드였으면 또 어쩔 것인가?
솔직히 이번 월드컵 내내 나는 한국팀이 잘하는 팀, 그러니까 실력있는 팀이라는 생각을 한번도 못해봤다.
베트남에 있어서 더더욱 자주 보게된 다른 나라의 경기 모습과 비교하자면,
한국은 스피드면서도 전술 면에서도, 개인기 면에서도 너무나도 딸리는 모습이었다.
국내에서 볼때는-솔직히 들을 때는-조금 하는 팀인 줄 알았더라니...

냉정하게 이야기 하자면 11대 10으로 경기한 토고전에서 공을 돌릴 때 한국팀의 실력은 이미 만방에 알려진 것이었다.
자신없음. 실력없음의 인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승리에 대한 집착은 간혹 열등감에서 나오는 과잉이다.

판정시비도 그렇다. 사실 한국은 토고전과 프랑스전에서 적지 않은 "판정시비"를 발판으로 해서 그나마 16강의 불씨를 살렸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스위스전에서 2대 0으로-2대 1도 아니고- 졌다.
재경기를 하자고 떼를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나 보다.
재경기 해서 어쩌자는 말인가?

왜 실력 없음을,
아직 한국은 더 배워야 것이 많음을 인정하는 것을 주저하는 것일까?
아니 왜 운동경기를 즐기는데 아직도 서툰 것일까?

사라진 희망의 자리에 남아있는 얼룩마냥,
또한번 대중주의의 유령이 등장했다.

난데없이 황우석 사태가 얼룩들의 반복으로 떠오른다. 

실상 "황우석"은 우리도 복제기술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에 불과했다.
이번 월드컵은 우리도 이제 16강을 "당당히" 노려볼 만 하다는 것에 불과했다.

애초부터 대상과 분리되었던 욕망의 천박한 전화라고나 해야할까? 

그나저나,
이제 한국팀과 한국민이 기억해야할 것은 현저히 떨어진 선수들의 움직임과 조직화 되지 못 했던 전술, 여전히 풀지 못한 골결정력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있다.
사회적 정신건강을 위해 4년 뒤에도 똑같은 좌절을 경험하고 싶지 않으면 말이다.

축구를 보기조차 이렇게 힘들다니!! "전투 축구" 관람이라도 이젠 그만 하자..!

p.s. 사족으로 또 한 사람의 전투축구 관객으로서 한마디 남겨보자면, 박주영은 아직 국내용인 듯 싶었다.
      스위스전에서 최대의 실수 기용인 듯.
       검증 안된 선수 이름값은 가끔 독이 된다.

       베트남에서 프랑스인 무리떼들과 함께 경기를 보던 날 그들의 광란속에서 파묻혀 나홀로 코리언이었던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험이었다.
     왜 받아먹는지도 모를 공짜 위로주만 엄청 얻어먹었다. 젠장! 그래도 공짜잖아.

Democratization of academic disciplines

갑자기 수업을 준비하다 생각이나서, 잊어먹기 전에 적어둔다.

지난 토요일 사회학과 이박사와 커피를 마시다 나눈 이야기 중에 UC Irvine 에서 왔다는 교수의 콜로퀴엄에 관련된 이야기가 있었다.

이박사의 전언에 따르면,

그 교수의 주된 논지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과 다르게 Practical 한 학문의 영역은 오히려 대학내에서 그 자리가 축소되었던 반면, 근대 교육의 이상- 보편주의적 지식습득-에 부합하는 학문들은 그 실질적 조건으로서 학문시스템의 민주화와 더불어 계속 발전해 나아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00년도 초기에는 오히려 미국에서 구체적인 실용과학이 대학에서 가르쳐졌지만, 점차 그런 구체적 실용과학들은 대학에서 밀려나고 사회의 다른 부분으로 전이되어 왔다는 것이다. 커리큘럼의 분석을 통해 그런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다른 한편 인문학의 쇠퇴는 그것이 일반적인 지식의 습득을 통해 삶을 영위할 가능성이 봉쇄됨으로써, 다시 말해 아주 특별한 재능있는 이들에게만이 학문적 성취의 길이 열린다는 점에서 근대적 교육의 일반적 정신에 위배되고, 학문의 민주주의 자체도 봉쇄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매우 흥미로운 분석인데, 혹시나 다음에 좀 더 생각을 해 볼 여유가 있을지 몰라서 기록해 둔다.

내 안의 인종주의

어제 한국과 일본이 야구를 하던 날,

텔레비젼이 없는 관계로 사회학과에 함께 입학한 분 집에가서 보기로 하고,

먹을 것을 사러 해리스 티터에 들렀다.

맥주안주로 뭐가 괜찮을까 두리번 거리다가, 육포가 괜찮겠구나 해서 찾고 있는데
미국의 대형 할인 마트가 그렇듯,
육포를 찾아 하염없이 물건들의 대열사이를 빙글빙글 돌다 지쳐갔다.

그러다가 누군가에게 물어볼까 하고 두리번거리는데,
어떤 아프리칸 어메리칸이 무거운 생수박스를 막 진열대에 올리고 있지 않은가?

이때다 싶어서 바로 달려가 어디서 육포를 찾을 수 있냐고 대뜸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그러나 "I don't work here."

영화 Crash를 보고 미국인들이 인종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가뜩이나 화가 나있어서였을까?
갑자기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할인점에서 일하는 사람은 히스패닉이거나 흑인이라는 현실에 아무렇지도 않게 나 또한 멀쩡하게 차려입고 자신이 사지 않을 물건을 되돌려 놓고 있는 이에게 의례 껏 종업원이라고 생각했던 나와 한참을 머쓱해하던 그의 표정이 아직 남아 있다.

할인마트에서 일하는 것을 폄하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고 머쓱해졌을까?

영화 탓이다. 그러고보면 정치적으로 옳바르게 산다는 것은 세상의 딜레마를 철폐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기획인데다가 스스로 딜레마에 빠지는 효과만을 생산해 내는 듯.

그나저나 Crash 는 아직도 좀 짜증나는 영화로 자꾸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제목만 거창한 글이 되고 말았다.

민노당의 철도 무임승차권 반납 기사에 부쳐..

"권리를 포기하다" 와 "권리를 제한하다"는 다른 것이다.

국회의원들에게 있다는 철도 무임승차권의 법적 효력이 철도공사의 민영화로 없어졌다는 점에서 일단 민노당의 "준법정신"에는 별다른 유감이 없다.

한데 이것을 국회의원의 특권으로 몰고가는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
당장은 정치적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이건 좀 아니다.

월급을 안 받겠다는 대학총장, 세비를 사회환원하겠다는 국회의원, 그들이야 말로 사실 돈으로 정치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청렴성의 기준이 그런 것이어서 기초단체 의원들은 돈이 없어서 무슨 의정활동이라고 할 것도 못한다. 동네 주유소 사장, 무슨 무슨 유지들이 그런 기초의회 선거에 나가는 이유는 일단 돈은 좀 챙겨놨고 말 그대로 명예를 얻기 위함이다. 그 명예가 언젠가 돈으로 다시 바뀔 것이라는 전제하에.

다시 돌아가 보자면, 국회의원이 열심히 활동한다면, 그가 가진 권리를 확대하거나 해도 문제가 안된다. 여기에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그런 국회의원을 찾아 볼 수 없으니까. 반면 민노당 의원들의 경우 전국구 중심이니 오히려 전국적인 활동영역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 아닌가?

어쨌든 나는 과잉된 과시적 청렴주의 혹은 권리 포기주의는 문제라고 본다. 일을 하게하고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닌가?

물론 민노당이 장애인들에 대한 무임승차 확대를 언급한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런데 이것도 국회의원 몇명이 무임승차 안한다고 얻어질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구나 민영화된 것이라면 법적 구속력도 없을 것이고. 서로 다른 문제의 과도한 논리적 연결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추가비용을 지불하게하고 장애인을 무료로 탑승시킨다는 논리와 얼마나 다른 것인지 모르겠다. 현실적으로 소득세를 제외한 소비세 중심의 제도는 어떤측면에서 전면 수정이 필요한 것 아닌가? 검약 검소의 청교도적 윤리는 나를 불편하게 한다.

왜 그들의 권리를 포기하는 방식으로 이슈 메이킹을 해야만 했을까?
뭐 권리가 더이상 법적으로 될 수 없다니 이것도 논리상으론 말이 안되는 비판이겠지만, 그래도 묘한 딜레마가 겹쳐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망각의 리듬..

자꾸 깜박거린다.
자꾸 긁적거리고.
자꾸 말문이 막히고
자꾸 헛 짓을 한다.

그리고 가끔 또렷해지고.
가끔 시원해지고
가끔 술술 나오고
가끔 제 짓을 한다.

리듬이 변하고 있고,

망각의 스타카토.
강박의 인터메쪼.

신문기사들..

너무들 하지 않은가? 물론 기사라는 것의 권위가 사라진 것은 일면 긍정적인 측면도 있을 수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가끔 신문들을 읽노라면 도대체 요즘 세상에 누가 기자이고 기자이고자 하는가를 묻고 싶어진다.

가장 큰 문제는 일단 분석이 없는 3류 소설의 난무다.
기자의 상상력이라도 볼만 하면 좋으련만,
뻔한 내러티브로 반복되는 기사들이란 최소한의 읽는 재미조차 잃게한다.

설익은 기사들로 인터넷 포털사이트들을 도배하는 그들에게 가끔은 정말 묻고 싶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느냐고. 당신들에게 그런게 있기나 하는 거냐고.

최근들어 사람들이 연합통신과 YTN의 "보도"에 보다 끌리는 이유는,
이미 "기사"라는 형식이 그 문체적 파탄에 다다랐으며,
더이상 글을 쓰는 문필적 기자의 존재가 의미가 없음을 알리는 부고장에 다름이 아닌 듯.

하긴 어쩌면 이제 기자없는 기사의 시대가 열렸다고,
작가없는 작품의 세계마냥 새시대의 서막에 익숙해져야하는지도 모른다.

노동이 상품이냐고 묻는다면.

오마이 뉴스에 어느 공무원 노동자가 썼다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가 있었다. 내용은 CEO 형 지자체장과 기업형 지차체에 보내는 노무현 정권의 찬사가 공무원 노동자들의 희생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다. 한데 그것은 노무현 정권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 한국 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의 일반적 정서라는 점에서 공무원 노동자의 비애가 있다.

사실 나부터서 공무원 노동자의 "희생"이라는게 잘 감이 안온다. 아마도 이유는 한편에서 내가 반국가적이어서 일 수도 있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공무"에 대한 이미지 자체가 아직까지도 그 공공성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지 않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하긴 어쩌면 그 공공성은 국가주의와 부합되는 것 같기도 하나 결국 공공적 가치의 국가적 전유로 귀결되는 것일 것이기에 섯부른 기대 자체가 문제적이라고나 할 까? 다른 하나는 이른바 "공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희생"과 "헌신"을 이미 내재화하고 있는 우리내 의식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공무란 자기아닌 누군가 혹은 적어도 보다 많은 이들을 위한 일이 될 것이므로 다시 그 자리에서 "희생"을 발굴해내는 것이 "미담"류가 되지 않는 한에서는 얼마간의 저항이 불가피 하지 않을까 싶다.

그 공무원 노동자의 편지글에서 내가 느낀 또 다른 문제는 "서비스가 상품인가요"라는 식으로 되묻는 것이었다. 나의 첫 번째 반응은--아니 그럼 서비스가 상품이 아니란 말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였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노동은 상품화 된다는 가설에 대한 도전일 수도 있는 이 질문은, 그러나 최소한 정치적 수사로서도 거의 무의미하다는게 내 생각이다.
도대체 왜 공무원 노동자라고 스스로를 재정의하려고 하는 것인가? 공무 서비스가 상품이 아니라면. 자신의 노동력의 상품적 가치를 전면에 대세우지 않는다면 어떻게 공무원 노동자가 기업"형" 지자체에서 CEO "형" 단체장들과 교섭할 수 있을 것인가? 자본이 한 발 나가면 두발 앞질러가거나 떠밀어 내는 것이 노동자가 근대 자본주의 역사에 아로새긴 발자취가 아니었나?

분명 문제는 쉽게 단순화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것이다. 이른바 "단결권"과 "단체행동권", "교섭권"들을 확보함으로서 노동조건과 고용환경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1차적 의의를 부정할 수는 더더욱 없다. 그러나 단순한 감정적인 호소를 통해서 극복되는 상황이란 남녀간(이제는 남남간 녀녀간 남녀남간 녀남녀간 남남남간 녀녀녀간등을 동시에 표기해야 정치적으로 더욱 옳바르겠지만) 연애 관계에서도 힘든 문제다. 더구나 한국사회 비공무원 국민들은 공무원에 대해 "애뜻"하지도 않는데 말이다.

그놈의 CEO 타령도 지겹지만, "인간은,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근본주의는 이제 더이상 얻을 것도 없지 않은가? 지난한 싸움 끝에 합법화된 전교조의 현실은 노동의 상품적 성격에 대한 근본적 인식의 부재가 만들어낸 것은 또 아닐까? 학원에 가서 시험준비하라는 전교조 교사, 벙원에 가서 정기검사 받으라는 보건소 직원, 재개발 업자와 협상하라는 구청 도시계획과 직원들의 당당함도 문제적이지 않은가? 국가없는 공무원의 꿈, 자유로운 "공무노동"의 꿈은 공상에 지나지 않는 단 말인가?

"그러나 나는 면서기가 되어 집안의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했다고" 썼던 김남주가 갑자기 생각나는 것은 공무 노동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느낌 때문인 것 같다.
노동의 세속화는 멈출 수 없는 역사의 기관차다.
모든 노동의 세속화가 이루어질 때 노동은 아마도 그 자체로서 소멸할 것이고.

"감동적"이야.

그러고 보면 나라는 인간은 감정을 표현하는 다양한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를테면, 내 감정의 언어들은 마치 갱지위에 등사된 언어들 같다고나 할까?

슬퍼. 재밌어. 웃겨. 그저그래. 뭐...

그거 참 감동적인던데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치 "이 꽃들 봐 너무 사랑스럽지 않아?"라고 말하는 인간에게서 종종 느끼는 것 마냥 내 몸의 털들이 일어나 깃털이 되는 것 같다.
뭐랄까 내게 감동은 이를테면 언어화 될 수 없는 어떤 진정성이랄까? 마치 고통이 그렇고, 사랑이 그렇다고 믿고 싶어지는. 물론 "진정한 것"들이 항상 특별하지는 않다. 괴테와 맑스를 따라 그저 그렇게 "오직 푸르른 것은 저소나무"라고 말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

요즘 읽고 있는 책을 통해 다시 떠오른 마르뀌 드 사드의 소돔 120일에서도 고통은 심지어 "비명"이란 표현 속에서도 불분명한 지극히 육체적인 것인 것인 동시에 정신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사족이지만 사드는 참 물건이다. 그 깜직함이란!) 육체적인 감각들도 무뎌지고 정신적인 감각들도 무덤덤 해진다. 어쨌든 실상 언어적인 것으로 붙잡히긴 힘든 어떤 감정들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끔씩 몸의 기억과 반응을 언어화 시키고 싶을 때도 있는데, 발화하는 그 순간에 밀려오는 소름. 언어가 되고 나면 모든 것이 사라져버릴 지도 모른다는 그 불안의 공포감이 자꾸 목구멍을 가로 막고 손을 마비시킨다.

감동의 모호함에 대하여 단지 모호함을 찬양하거나 동어반복의 습관적 표현들에 만족해야만 할까?
감동은 그런데 전이되는 것일까? 다중적으로 생성되는 것일까? 당신에게 감동을 전한다는 수사는 어쨌든 한 갓 수사에 지나지 않는 것 같고, 마치 이성이 그렇듯 감정도 생성의 조건과 동학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할 테고, 육체의 오르가즘이 정신을 풀어 놓 듯, "감동"도 할 말을 잃은 정신이 육체를 풀어 놓기도 하는 것 일까?

그러고보니 오르가즘에 대응하는 카타르시스라는 표현이 있었군!
오르가즘이 몸을 정화하던가??? 어째 감동은 정화인가?

사드를 따라, "정화조"가 아니고!

설득하지 못하는 자의 자괴감

꼭 반드시 내가 영어로 말해야 했기 때문은 아니었던 듯 하다.
자꾸만 말이 짧아지고 공감의 자리를 만들기 보다는 강압적 논리를 펼치는 버릇은 돌이켜 생각하니 참으로 오래된 습관이다.

91년 봄, 이른바 정치적 논쟁을 통한(사실상 구색맞추기 뿐이었던) 조직적 장악에 앞장 선 이래로, 나는 줄 곳 남을 설득하는 것 보다는 내 의견을 "선언"하는 편을 택해왔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이를테면 어떤 일과 논쟁의 리더가 되는 것을 주저 해 왔다. 대학교때 학생회장을 할 때 조차도 그 자리가 내자리가 아니라는 느낌으로 일년간 고민했어야 했다. 내 의견을 관철시키는 지난한 작업에 적잖이 넌덜이도 냈었던 것 같고, 의견을 감춰야 한다는 "기술적 요구"에 대해서도 부던히도 불편해 했었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나의 태도를 "차갑다"고 했고, 또 어떤이들은 "재수없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냉철함"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그것은 대개의 경우 "말만 잘 해"라는 시니컬한 평가로 되돌아오기 일쑤였다.

어울리지 않게도 나는 개인주의자거나 아웃사이더가 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늘 사람들 속에 있고 싶어하고 대화에 참여하고 싶어하고 문제들에 끼어들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 결과 어제처럼 찜찜함을 사람들 사이에서 종종 느껴가며 살아오고 있다.

전공수업 Syllabus를 결정하기 위한 과 동기들 모임에서, 나는 "이책이 없다" "이 학파가 빠졌다"고 말하는 동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참을 수 없어" 그것들이 꼭 이번학기 수업에 필요한지가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펼쳤다.
그러다가 마지막 시험보는 문제에 이르러서는 또 "나는 모든 시험"에 기본적으로 반대한다는 근본적인 입장을 제시했다. 적어도 대학원생에게는이라는 단서를 달았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시험으로 취직되지는 않는다"고 덧붙이긴 했지만.

원론적이고 근본적인 내 입장은 그 어조의 단호함 때문에 상대방의 말문을 막는데는 성공했지만, 모두들 편안하게 내 입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물론 내 짧은 영어에다 기본적으로 내 어조에 깔려있는 상대에 대한 "무시"가 있었겠지만 결국 나는 그 썰렁해진 분위기에 표정관리도 안되는 어정쩡함을 회피하기 위해서 몇 발짝 뒤로 물러서야했다. "뭐 반드시 그래야하는 것은 아니고.." "이런 의견도 있다는 젓도에서...."
이미 때는 좀 늦었고, 그래서는 안될 것이었는데도.
시간때문에 자리를 급히 정리해야되는 상황과 맞물려 서로 인사도 제대로 안하고 빠져나는 분위기란 분위기를 격양시켰던 내가 어떤 책임을 느껴야는 묘한 뒷여운을 남겼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니 뭔지모를 자괴감 사이로 그간 내 말투와 어법과 대화의 기술들에 대한 반성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물론 바로 그 전날 선배 L이 내개 한차례 지적을 했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얼마전 술자리에서 남을 비판하던 내 모습에 대한 그의 스케치는 직접적이지는 않았고 뭘 말하고 싶었는지 불분명 했지만 아마도 그때문에 내 속에 물음표로 남아 있던 것이기도 했다.

모든 문제의 조건을 살펴봤을 때 아마도 내가 남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안한지 오래됐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석사논문을 쓰기 시작하면서 급속히 이른바 "사회적" 관계로 부터 멀어진 이래 익숙하고 오랜 관계들의 몇몇을 제외하고는 장기간 장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하고, 토론을 해본 적이 없는 것도 같다.
다른 한편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는 대화술의 기본 전제가 아주 희미해져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것은 얼마간 "비사회적" 화법에 대한 나의 동경에 기초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도 같지만, 그래도 천편일률적인 언어적 "폭발"은 그 불연소때문에 화약냄새만 진동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도 같다.

어쨌든 남들이 기분 나빠지는 것 만큼 최소한 내가 기분이 나빠져서는 안될 것인데 나는 자꾸 그렇게 되가는 것 같으니 대화와 토론이 변비와 치질의 고통처럼 기억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말하고 싶은 특별한 것을 가지고 사는 인생인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삶인지 아마도 이런 자괴감은 이런 저런 심연과 이어져 있을 것인데..

메시아의 운명... 황우석...

대단한 사람이다.
"줄기세포"는 "안 남아" 있어도 자신을 중심으로한 "줄기 세포" 조직-황우석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굳건히 남아 있으니 그는 큰일을 해낸 셈이다.

그리고 이제 그 "세포 조직"을 보호하는 일에 "원천기술" 보호 보다 더 매달려 있으니 그의 리더쉽 또한 "스너피"를 끌고 산책하는 그런 "가이드 쉽"따위에선 한참 멀어진지 오래다.

정신의학적인 관점에서도 어차피 줄기세포 사진을 본적도, 어차피 그딴건 상관도 없이 "새 생명", "세계제일"의 환타지를 경험했을 다수의 사람들에게 그는 쉽게 사과하고 사죄하는 나약한 존재가 되서는 안될 터였다. 광기의 소진을 위해 어쩌면 그는 치료사를 자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앉은뱅이를 세울수는 없어도 넋을 뺏는 신묘를 부렸으니, 이제 이 넋나간 인간들을 정상적인 인간들 속에 어울려 있게 하는 것이 그의 마지막 소명인지도 모른다.

모세가 바다를 못 가른다고 물러서야 하겠는가?
"이 바다가 아닌가벼" 라고 말하는 코믹이 안통하는 이상,
"너희들 중에 사탄이 끼어있다고" 성을 내는 배포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거다.
적어도 그는 "선한 사마리아 인이었던 모세"가 되어야 했고 그렇게 되려고 노력중인 듯. 이 놀라운 "동물적 감각"은 어디서 복제했을까?

황우석 그는 어쩌면,
개인적 능력을 벗어난 주목을 기대하고,
상식에 벗어난 성공을 꿈꾸며,
대중주의에 기초하는 모든 "과학주의"의 수렁인 듯.
그리고 또 어쩌면 이번 사건은 21세기 과학지상주의 시대의 포르노그라피일런지도 모른다. "신지식인", "최고과학자"의 작위는 천편일률의 각본과 클로즈업의 조명만이 남을지도 모르니까..

국제적 사기도 아무나 치는 것은 아니고....
사기는 크게 쳐야한다는 "대범" 컴플레스가 다시한번 여러사람의 시니컬함을 자극하고.

그나저나 "개 훌레꾼", "소 젖 안마사"등등의 오랜 홀대를 받아왔던 한국 수의학계가 마침내 과학의 별이 되나 싶더니..
"별"은 지고 그 꼬리는 길게 남는군...
2006. 1. 4. 23:01

진찰(診察)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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