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미국 대학 임금 동결

오랜만에 대학 총장한테 이메일을 받은 기념으로(사실 총동문회에서도 왔다. 아직 난 학생인데 영 불편하다 기부를 요구할 때는 특히나) 이곳에 들어왔다.

대학 총장이 이를테면 가정 통신문겸 학교구성원 통지문으로 보낸 이메일이 한두번은 아니었지만, 이번 것은 미국경제의 암울함을 활자 한자한자에 가득 담은 느낌이다.

요지는 2010년에 일년에 $ 50,000 이상 임금을 받는 학교내 모든 직원들의 임금이 동결된단다. $ 50,000 이하의 임금을 받는 직원들의 경우엔 "괜찮았어요" 등급에 준하는 평가를 받으면 $ 1,000 보너스를 준단다.
그대신 의료보험등 각종 혜택은 변동이 없단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한국인들에게 이미 익숙한 "명퇴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새로운 사람을 안 뽑으며, 기존의 인력을 재배치하고 등등의 구조개선 조치를 취할 계획이란다.

대학 이사회의 결정이라는데, 작년기준으로 기부금이 약 20%가 줄어들었고, 경제위기 상황을 감안해서 최근 몇년간 최저수준인 3.9% 등록금 인상률을 책정한 결과, 앞으로 몇년간 1억 2천 5백만 달러정도의 재정적자가 예상된단다.
무슨 AIG도 아니고 리만브라더스도 아닌데, 하여간 재정이 아주 튼실하다고 평가받았던 미국의 한 사립대학의 상황이 이러하다.

그나마 다행인건 교육환경 개선에 대한 투자는 비록 속도가 예전 보단 늦을 지라도 계속 진행할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또 개인적으로는 박사과정생에게 제공되는 stipend가 이 와중에도 "소폭" 인상이 있을 것이라는 소식에 귀가 솔깃해졌는데, 몇달 전만해도 "소폭"이 아니라 전면적인 stipend 시스템 개선을 추진했던 것과 비교하면 뭐 이것도 동결에 가까운 소식이다.

어쨌든 총장왈, "우리는 현재 지금까지 우리가 익숙해져 왔던 최근 몇년과는 다른 세상으로 진입하고 있다"는데,
신문에서 기사만 읽다가 대학총장한테 이런 메일을 받으니 섬뜩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다른 세상을 열기는 하는 모양이다.
그 다른 세상의 다음을 삶-노동의 몫으로 되돌리는 일이 필요하겠지!

미국의 사립대학이 기업화 되어있다는 사실은 뼈져리게 느낀 셈이다.
오바마가 대학이란 단어를 그 어느 때 보다 여러번 상하원 연설문에서 썼다던데...

그나저나 전봇대, 농림부장관 넥타이등 묘한 패티시즘이 있으신 우리 MB씨는 이 경제위기 상황에서
교육엔 관심이나 있긴 한 것 일까? 하긴 교육에 대한 투자고 뭐시고 애들만 닥달하면 된다는 식의 일제고사가 있구먼.



희망의 아비트티리지


지난 대선시기에 이른바 BBK와 이명박, 김경준의 진실논쟁이 한창 뜨거웠다.
당시 흘려들었던 이야기 중에,이명박이 김경준을 아비트리지의 천재라고 치켜세우며 소개하고 다녔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때는 그저 채권 같은 것의 "시세차익" 혹은 "차액거래"를 실현하는 금융기법 정도로만 이해를 하고 말았었는데, 오늘 과에서 있었던 초청강연을 듣고보니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삽질밖에 모르던" 이명박이 나름 첨단 금융사업을 펼치고 싶어했다는 것은 분명한데, 그게 왜 아비트리지였을까도 좀 생각을 해봤었으면 적어도 강연 중에 이해도가 좀 빨랐을지도 몰랐겠다는 후회도 된다.
그나저나 이명박의 요즘 정치행태를 보아 아비트리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던 것은 아닌게 분명하니, 그의 일관된 주장 마냥 "사기"를 당한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던 것이 분명한 것도 같다. 

오늘 초청강사는 이병박이 극찬했던 김경준 같은 "아비트리지 천재"가 아니라 코넬에서 인류학을 가르치는 일본인 교수 Hiro Miyazaki 였다.
사실 이 강연은 예정되어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지난주 봄방학 기간동안에 급하게 일정이 잡힌 것이다. 미국의 대학에는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한 교수임용 방식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패키지 딜"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패키지 딜의 대상이 되는 자격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몇개의 대학에서 동시에 임용제안을 받거나, 이미 학계의 "스타"인 경우에 스카웃트시에만 주어진다. 보다 나은 조건을 피임용자가 고용주에 제시하는 기회를 갖는 것인데, 대개 "패키지 딜"이라고 하면 배우자를 자신이 일하게될 학교에 데리고가 일할 수 있도록 요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드문경우지만 때론 지도하고 있는 대학원생을 데리고 가기도 하고, 심지어는 형제자매를 취업시키기도 한다. 
한국의  고용문화에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겠지만, 어쨌든 미국의 대학은 보다 능력있는 교수 한명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그녀의 "식솔"들을 함께 거두는 방식을 거침없이 사용한다. 그렇다고 아무 능력없는 사람을 자리에 앉히는 것은 아니고, "최소한"의 능력정도는 평가하는 형식적 절차는 있다. 이러한 "공격적" 임용방식은 물론 "돈많은" 사립대학 혹은 돈잘 끌어오는 특정과에서 주로 쓰는 방식이다. 유명교수만 확보해도 과나 대학 랭킹이 몇단계 움직인다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따라서 이 공격적 임용경쟁을 통해 대학들간의 격차나 각 과들간의 격차가 극대화되는 지적 불균등성이 생산된다. (사족이지만, 심지어 대학원생이 "어드미션 딜"을 하는 것도 봤다.)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Hiro 선생의 강연은 그의 부인(같은 인류학자이면서 변호사이기도한)을 로스쿨에 데려오고 싶어하는 학교의 전략에 따라, 그가 우리과에 "임용가능한지"를 측정하는 준 임용심사로 마련된 것이었다. 부인도 Hiro 강연 직전에 공식 행사는 아니었지만, 비공식 "브라운 백" (점심을 갈색 봉지에 담아다녔다는데서 유래한) 집담회를 과 교수, 대학원생들과 함께 했다. 부인이 브라운백 하는 동안 아이를 안고 강의실 밖을 배회하던 Hiro 선생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Hiro 교수는 일본과 피지의 파이낸셜 마켓 현지조사를 통해 "희망"이라는 독특한 인류학적 주제를 끌어내는 연구를 해오고 있다고 한다. 파이낸셜 마켓의 연구를 경제학이나 경영학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인류학적 논의의 대상으로 만들어낸 것은 그 자체로써 인상적이었는데, 특히 현재의 지구적 파이낸셜 마켓에서 그 일상적 실천의 양식을 분석해 내려는 시도는 개인적으로는 처음 들어본 연구주제인 데다가 그 연구관심자체만으로도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강연의 주제는 "희망의 일시성"이었다. 주로 일본의 파이낸셜 마켓과 정치사회적 담론의 연관성에 대한 분석을 통해, Hiro 교수는 신자유주의 글로벌 시대의 희망의 논리를  이명박 마저 자신의 능력에 걸맞지 않게 빠져들었다던 "아비트리지" 와 "천재"는 아니었던게 분명한 김경준과 같은 "아비트레져"로 부터 도출해 내고자 시도중이라고 했다.
사실 강연 내용이 낯선주제였기 때문에 제대로 이해를 한 것은 아니고, 개인적으로 너무나도 부러운 영어실력이었지만, 그도 일본인인지라 그의 독특한 영어발음은 내 귀에서 미끄러질 때가 많았다. 어차피 잘 "듣는" 성향이 아닌고로 강연 내내 내 맘대로 생각을 펼쳤던 것도 같다. 따라서 이 노트는 얼마간 Hiro 선생의 강연내용과는 차이가 있는 것인 셈이다.

신자유주의시대와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전지구적 환경을 시장화 시켜냈다고 한다면 그 시장작동 원리의 핵심인 "보다 많은 이윤"을 창출하고자 하는 "희망"이 거래되는 새로운 방식을 단지 경제적인 차원의 기법으로만 바라 볼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설득력있게 들렸다. 
내겐 금시초문의 내용이었지만, 놀라운 것은 이미 일본에서는 이러한 시도들이 "대중지식인"들과 학자들 사이에서 진행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도대체 한국의 서점에는 어째 "10억 만들기"서적들 밖에는 안보이는 것일까 하는 통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출판사에서 "BBK와 아비트리지" 정도의 제목으로 기획출판을 하면 그래도 좀 팔리지 않을까 싶은데 그나마 시장 감각도 없는것일까?

Hiro 교수의 발표에서 핵심 참고자료로 소개했던 일본 책들을 나열해보면,

Yamada Mashiro, 2004, Kibo Kakusa Shakai, Tokyo: Chikumashobo
Genda Yuji, 2001, Shigoto no naka no aimaina fuan 

어차피 일본어를 못하니까 나는 위의 두학자는 "파워포인트 상의 떡"일 따름이었는데, 그나마 내가 귀를 쫑긋 세울 수 있었던 것은, 한때 내가 열독했던 무라카미 류의 최근 작품들이었다. 이제 무라카미 류는 일본의 "대중지성"으로 인정을 받는 수준에 이르렀나 보다.

무라카미 류의 Kibo No Kuni No Ekusodasu (한국에선 Exodus 로 번역되어 있는 것 같다)를 일본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한 문학작품으로 소개하면서, 그 작품의 내러티브와 일본 사회의 아비트리지 열광을 비교분석했다. 문제는 내가 류의 작품을 한동안 못 읽어봤다는 것인데, Hiro 선생의 소개에 따르면 이 소설이 일본의 금융시장까지 다루고 있고 "희망"없다는 일본 사회에서 "희망"이 거래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5월에 한국들어가면 꼭 읽어봐야겠다.

일단 내가 새롭게 알게된 사실은 아비트리지가 이명박과 BBK 때문에 지나치게 강화된 이미지처럼 단순한 "투기"나 "사기"는 아니라는 사실아다.
이명박은 땅투기로 성이 안차 금융투기 한판 해보고 싶어 아비트리지에 관심을 가졌는지도 모르지만, 그가 정치적 야망이 있는 한 나름 사회적 도덕률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도 같다. 아비트리지는 아마도 그에게"안전"한 "첨단" 이윤창출의 기회로 보였을 법도 한데, 그가 그 세계에 발 들여놓은 것은 얼마간은 그의 "눈칫밥"인생의 긍정적 결과라고 말해 줄 수도 있을 법 싶다.

아비트리지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어서 복습겸해서 찾아보니 역시 일본 사람들이 이미 연구를 많이 한 주제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벌써 중고서점에서 판매중인 "보이지 않은 대륙"이란 책에 따르면:

* 아비트리지
아비트리지는 공급자에 대한통제나 협상이 아닌 ||^선택||^만으로 더 좋은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을 더 저렴한 가격에 얻는 거래이다. 기존 공급자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더 나은 파트너와 손을 잡는 새로운 선택을 함으로써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물론 기존의 공급자에게 등을 돌림으로써 불행해지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아비트리지로 인한 절감 효과가 너무 크기 때문에 새로운 선택은 필수적이다. 아비트리지는 기업, 교육, 서비스, 행정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엄청난 속도로 반복적으로 수없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에 의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실로 엄청나다. 인터넷 기업의 등장으로 기존의 수직적인 가치 사슬이 수평적 거미줄 구조로 아비트리지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일본의 아이모드 인터넷 서비스가 전자우편에 자료를 첨부하는 데 단 1센트의 요금을 부과함으로써 요금이 비싼 다른 서비스와 빠르게 아비트리지되고 있다. 아비트리지가 활성화되면 지구 반대편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이용함으로써 시간의 제한을 극복할 수 있고, 관료들을 정확하고 능률적인 전산 시스템과 아비트리지하여 관료주의를 타파할 수도 있다. 수천 명의 무능한 선생님은 텔레커뮤니케이션의 등장으로 단 한 명의 유능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한 명의 선생님으로 아비트리지될 수 있다. 또한 자국의 통화가 매우 불안정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금의 가치가 유동적이라면 보다 안정적인 통화로 아비트리지하여 안전하게 자산을 보유할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대륙에서는 아비트리지를 효율적으로 적시에 활용하는 것과 아비트리지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더 나은 서비스와 품질을 갖추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다.

(출처: http://www.gorebook.co.kr/shop/shopdetail.html?brandcode=030004000734)


이 설명은 이미 경제학에서의 아비트리지를 확장한 것으로 보이는 데, 일단 아비트리지가 신자유주의적인 이상의 시장 구현 논리와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

아비트리지는 지구적 시장과 거래 기술의 진보와 맞물려 등장했다. 또한 역설적으로 그렇게 형성된 시장 조건들과 상황들의 불균등성에 바탕을 둔 시장의 모순에 입각한 제도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것은 "공급자는 불행해 질 수 있으나" 구매자 혹은 아비트레이져는 이론적으로는 "불행해질 위험"이 없다는데 있다. 이것이 아비트리지가 "스펙큘레이터"와 구분되는 지점이고 "위험없는 수익 risk-free return"을 약속하는 방식이다. 아직은 경제학에서의 직접적인 적용의 예를 읽어보고도 알듯 모르듯 한데,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경영학 박사과정이자 여러 초국적 컨설팅 펌에서 일한 화려한 경력의 내 하우스메이트에게 지도를 받아야 할 듯.      

이 아비트리지의 논리로 부터 Hiro 교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희망의 경제학을 제시한다. 시장에서의 희망-주로 이윤 증대로 표출되는-의 논리가 개개인의 삶의 희망의 논리로 확장되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논지에 따르면 아비트리지화된 희망은 스펙큘러티브한 희망과는 다르다. 현실과 "도래할" 혹은 "약속된" 미래를 매개하는 스펙큘레이션의 자리에 있는 희망이 아닌 아비트리지화된 희망은 현실자체에서 그 이상의 가치를 실현할 가능성으로 자리한다. 그 자산에 대한 현실적 평가 조건으로 부터 그것의 "이윤 회수율"을 시장간의 차이 혹은 모순으로 부터 실시간으로 회수하고 실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의 일상화는 국가간의 경쟁 혹은 시장간의 경쟁이 일상화된 지구적인 조건에서 가능해 진다. 한데 문제는 "보유자산"에 대한 가치 평가의 복잡성과 아비트리지의 일시성에 있다. 시장에서의 가치 결정이 그러한 것 처럼, 삶과 사회 내의 여러 자원들에 대한 가치들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아비트리지는 본질적으로는 가치의 차이를 통한 이윤 실현을 통해 시장간의 가치 차이를 없애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일시적면서 반복적인 과정으로 행하여진다. "희망"은 이 속에서 "한방"에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가치의 발랜스를 조정하는 과정에 놓이게 된다.

사실 이부분은 아직 좀 불확실하다. 맹점중에 하나는 Hiro 교수가 "희망"을 불확실하게 정의한 데다가, 시장에서의 가치 절상 혹은 이윤추구와 동일시 하면서 사회적 희망으로 즉자적으로 확장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시사점은 결국 "희망"이라는 것은 "보유자산"에 대한 평가에 기초한다는 존재론적 관점을 되살릴 수 있다는 점일 테다.
논리적인 측면에서, 경제학의 일반적 판타지와는 달리 아비트리지는 결국 "보유자산"에 대한 임의적인 평가에 기초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가치의 고/저는 일시적일 수 밖에 없다는 전제가 있다. 만약에 이러한 논의를 보다 정교하게 사회담론의 형성과 유통에 대한 분석에 적용할 수 있다면, "희망"이라는 "임의적 정의"들의 거소의 작동방식을 규명하는데 유의미할 것 같다. 또한 "개인화된 희망"-윤리적인 측면에서나 행위적인 차원에서도-의 공통감각이 형성되는 과정을 추척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논리적으로 "risk-free"에 결합된 "freedom"의 자리가 아비트리지를 통해 형성되는 희망의 지향점이니 말이다.

문답시간에도 잠깐 나왔지만, 왜 오바마에 미국이 열광하는가 그리고 일본사회는 또 왜 "희망"에 집착하는가등등을 전지구적인 상황과 시장의 질서들과 연관시켜 연구한다면, 글로벌 파이낸스 마켓이 우리의 의식과 실천속에 스며드는 어떤 지점들을 규명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Hiro 교수의 논지를 빌어보자면, 나는 지금 그의 강연 내용을 아비트리지화 하고 있는 셈일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좀 더 공부를 해 봐야 할 듯.
 


Cancun의 이동통신 판촉 모델- 신자유주의의 초상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동네 주변을 돌아보고 있는데, 멀리서 스피커의 쿵쾅 거림이 들려왔다.
귀에 익은 댄스 뮤직이 흘러나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아무도 걸어다니지는 않을 것 같은 길목에 한 여인이 춤을 추고 있다.

한국의 나레이터 모델처럼. 그러나 사탕으로 입을 봉한채 대신 광고 전단을 한손에 들고.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심심했는지 가게 앞에 나와 앉은 한 남정네만 보면서 춤을 추던데,
다가가서 사진이나 찍자고 할 것을, 후회가 막심이다. 내 인생은 항상 왜 이리 우물쭈물 주저주저일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망원 렌즈, 수전증 인증 샷.


이름모를 칸쿤의 "언니"께서 판촉하고 계시던 것은, Telcel 이라는 멕시코 최대의 이동통신회사였다.

"황금알"을 낳는다는 "첨단" 이동통신 시장이 창출한 "일자리"에서,
한국에서도 그렇듯, "몸쓰는" 바람잡이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Telcel 이라는 회사는 멕시코 핸드폰 사용자의 80%를 독점하는 괴물 같은 회사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 쓰던 내 AT&T 핸드폰도 별도의 신청도 없이 자동으로 Telcel 로 로밍이 되어버리던데,
알고보니 멕시코 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의 GSM 기반 무선 통신 시장을 싸그리 장악하고 있는 "독점재벌"이란다. 그나저나 AT&T는 내 의향이나 좀 물어보고 나를 멕시코 회사에 팔아먹던가 말이지, 전에 캐나다에서도 그러더니, 역시  NAFTA의 위력은 이런것인가 싶었다.

Telcel 의 모기업은 중남미 최대의 기업으로 알려져 있는 América Móvil 이다.
아메리카 모빌은 하비의 "신자유주의: 간략한 역사"에 소개될 정도로 "돈되는 데만 투자"하는 회사로도 악명이 높다.

이미 작년 10월 포브스에서 발표를 통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전세계 최고의 부자, Carlos Slim Helú (카를로스 슬림이라고 보통 표기한다)가 이 회사의 회장이다.
빌게이츠와 워렌 버핏을 누른 이시대 최고의 부자가 멕시코 기업가라는데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사실 그 만큼 카를로스의 "축재과정"은 멕시코 정치에 있어서 지극히 문제적인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카를로스 슬림이 클린턴이 주도하는 글로벌 이니셔티브에서 발언하는 사진이란다. 하긴 클린턴이 관철시킨 NAFTA로 멕시코 농민들이 죽음으로 내몰릴 때, 그 최대 수혜자가 이 카를로스가 아니던가?



카를로스가 세계 최대 부자가 된 가장 큰 기반은 1990년대 멕시코 정부의 "유선전화사업 민영화"에 있었다. 우리 MB 아저씨가 추진한다는 우체국 민영화도 똑같은 논리이듯, 국가 기간사업의 민영화는 시장의 논리에 따른 보다 나은 서비스 제공이라는 명목하에서 정당화 된다. 사실 국가 기간사업이 적자가 난다면 다른 세원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그러니까 부자들에게 그리고 투기성 경제행위로 부터 세수를 확보할 수도 있는 문제인데, 신자유주의 논리는 절대 소수 부자의 "부"를 건들지 않겠다는 철칙을 가진 듯 진행된다. 농촌에서 섬에서 편지로 고국의 소식을 주고 받고 보건소 진료에 의존하는 "다문화가정"은 애초에 고려 해 볼 생각도 안한 채, 재벌들의 법인세는 감면해주고 우체국, 의료보험등등은 민영화하겠다는 논리를 펼치는 과단성에 지금 한국은 열광하고 있으니....

어쩌면 문제의 핵심은 국가 기간 사업이 적자가 나고 있던 어떻든 간에, 그 기간 사업이 그나마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기반을 갖춘 것은 전적으로 "국민의 세금"이었다는 사실을 국가가 "시장논리"라는 불가피함으로 포장해서 잊어버리게 한다는데 있지 않은가 싶다. 

"합법을 가장한  부의 탈취"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초상이다. 
신자유주의 하의 국민들은 자신들이 내온 세금이 어느날 갑자기 한 개인의 "부"로 전환된다는 사실을 "당연스레" 경험하게 된다. 

결국 세계 최대 부자 카를로스의 재산은 사실상 멕시코 국민의 세금을 어느날 갑자기 가로챈 "합법적 도둑질"의 결과이고, 국가를 대신해 직접 세금 걷이에 나선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멕시코의 경우에도 유선전화사업 민영화는 정치적 결정이었다. 또, 통신사업 개방을 NAFTA 협정시 한시적으로 유예함으로써 카를로스의 독점적 지위를 보장해 주기까지했다. "자유무역협정" 속에서 멕시코 농민들이 토지를 잃고 파산해 갈 때 멕시코 정부가 한 것은 결국 "부자 한사람" 만들어주기였던 셈이다.

사실상 정권을 인수한 정부가 대체로 국가 기간 사업의 민영화를 추진 하는 것은, "자본에게 떡밥"을 던지는  정치적  제스처이기도 하다.
한국이 멕시코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수순을 밟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이미 노무현 정권하에서 삼성은 카를로스 처럼 "벼락부자"로 등극하지는 않았지만(엄밀하겐 이미 박정희가 해줬으니 불필요한 것이고), 정치적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성장하지 않았나?
MB에게 기대를 한껏 거는 현대가 이제 그 바통을 넘겨 받을 것인가?

"부자가 되는 길을 가로막지 맙시다" 라는 신자유주의의 허울 좋은 논리가 "몇 사람"의 부자 만들기로  귀결 되지 않기 위해서 멕시코의 사례는 유념해 볼 필요가 있다.

아무도 세계 최고의 부자를 가진 "멕시코"라고 자랑스러워 하진 않으니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공구상은 셔터내리고, 이동통신은 판촉에 나서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굽은 어깨로 보아 전직이 모델이셨던 것은 아니었나 본데, 신자유주의가 여성을 농업에서 해방시켜 어깨는 펴주는 것일까 하는 말도안되는 생각을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