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하나

** 누나 읽어 보았습니다.

저, 메일 받았는데요 . 반송이 되었었나요?
B 형은 같이 살고는 있으나 , 제가 별로 아는게 없으니 직접 소식을 들으시는게 누나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줄 같네요.  ^^

사실 첫번째 메일을 받고 몇자 끄적끄적 했었는데요 . 수업시간 전이라서 마무리도 못했고 입장이랄까 이런것도 애매하고 해서 어딘지 모르지만 드래프트박스에 들어가버렸던 같습니다. 추수감사절이라 도서관도 문을 걸어 잠그고 저도 별로 "" 하고 싶지 않으므로 느낌들을 풀어 놓아 볼까 합니다. (솔직히 좀 어설프게 마신 술기운이기도 합니다. 초롱초롱해져서..ㅎㅎ)

첫번째 메일을 받고 제가 쓰던 메일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 결정" 이다라는 였던 같습니다. " "이라는 앞에 "차라리" 혹은 "결국은 " 자리다툼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다시 생각해보니 둘다 차이를 만들지는 못하겠더군요.


세미나
계획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저도 관심이 있는 주제이긴 한데요 .
굳이 제  관심의 단편을 꺼내보인다면 , 같은 경우에는 Properties 자체에 보다 관심이 몰려 있는데 , 기본적으로 소유물이라는 사물의 특정 형식이 사물과 권리의 표상으로서 존재한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구요. 중첩되는 권리 효과 ( 심지어는 사물 자체의 존재적 조건으로서의 권리) 비밀은 독특한 존재적 형식에 끊임없이 기입된다는 가정때문입니다. 권리 행사의 매개였다가 권리보증의 기표였다가 권리 충돌의 장이기도 하니까요 . 보다 직접적으로 저는 상품의 형식으로써 소유물에 접근해보고 싶은 것인데, 그것은 교환가능성 , 다시말해 최소한의 가치생성의 가능성을 전제로 해서만이 소유감각 내부로 사물의 정렬이 이루어질 것이다는 가정때문입니다. 환경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것이아닐까 싶습니다만.


다른
관심은 하나는 " "라는 관념 혹은 감각에 대한 것인데요 . 그것이 사회적으로 "잉여 "라는 일시적 우연적 상태와 " 과잉"이라는 지속적 욕망의 순환이 교차하는 영역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물론 삶과 세계에 대한 윤리적 담론들 또한 스며들기도하구요. 그러니까 "가진 없어도 마음만은 부자 " 부터 "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 까지 자체를 대상적(소유물을 통해) 으로 구축하는 어떤 논리들에 대한 관심이지요. 부의 규준이   소유물의 총량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자본주의적 딜레마에 대한 관심이기도 합니다. 저도 개념적으로 최근 수업들과 몇몇 최근 맑스주의 독본들을 통해서 새로 관심을 갖게된 것이라 더이상 설명하는 것은 감당이 안될 같네요.

지난 여름에 베트남에 있을 포드재단이 후원한 "배급경제의 시대" 라는 전시회에 갔었는데요. 맑스가 제창한 사적소유의 철폐를 집단적소유로의 대체로 밖에 이해하지 했던 제한적 상상력의 역사는 결국 삶이 항상 위대하다라는 눈물나는 휴머니즘의 반복이더군요. 그런데 재밌는 것은 시기를 힘들고 암울하게 묘사하고 현재의 이른바 " 시장경제체제" 긍정하면서도, 내러티브 내부에 이질적으로 스며있는 "공유" 대한 향수 그리고 그것을 통한 현실부정이었지요. "그래도 그때는 내것 니것이 없었다" 라던지 "가진자 없는자라고 해서 지금 처럼 나뉘지 않았다"같은 이야기들 속에 말이지요 . 그런 향수는 어떤 의미에서는 물론 현재의 삶에 뿌려 향기나는 향수이기도 합니다만, 저는 신경증이 도지던데요 .사실 베트남의 경우에 배급경제 내부에 50 여개의 배급 차등 등급이 있었고 , 하여 부의 차등이 오히려 철저하게 구조적으로 행해졌던 것이었으니, 그때는 내것 니것이 없었다같은 말은 그들이 테레사 수녀였다가 지금은 집문을 이중 삼중으로 잠그고도 밤잠을 설치는 아줌마가 되었다고 자성하는 것이 아닌이상, 사실 별로 특별한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성찰성의 외재 화랄까. 오히려 " 동란 " 기억하는 한국의 내러티브들과 겹쳐놓고 보면 삶의 비정상성( 현실에 파악되는 ) 대한 일시성과 찰라성에 대한 도덕적 자위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벤야민이 언급한 "좌파 멜랑꼴리아" 동종이상에 다름 아닌 같구요. 결국은 어떤 수준에서 사회주의 배급경제는 소유감각을 흐트러 놓는데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얼마간 성공했으나 새로운 소유감각 혹은 반소유감각을 생성하는데는 실패했고 , 어미를 뺏어가면 근친상간은 안일어 것이라는 류(국유화)의 정치적 실험을 상당히 진지하고 고통스럽게 했던 셈이죠.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A형
글에 대한 **누나의 자세한 논평 보았습니다 .

제가 틀리지 않다면, 지난번 학회에서 발표한 글의 연장선상에 있는 같네요.

제가 기억하기엔 술자리에서 A형이 이글을 특수한 목적-한국역사연구회 였나보군요- 위해 글이라고 했던 같습니다 .

제가 글을 읽기는 힘들 갈구요. 물론 노력하면 안될 것이야 없습니다만, **누나가 자세한 발제겸 평을 해주신데다가, 안타깝지만 제가 범접하기 녹녹치 않을 같기 때문에 지금은 제가 전에 발표문과 발표를 보고 느꼈던 점들만 간략히 덧붙이고자 합니다.

**누나완 다르게 저는 사실 A형이 충분히 아줌마들 사이에서 명사가 있을 것이다고 생각하는데요. 튼실한 허벅지 때문이 아니라, 순진하게 들리겠지만 요즘 주말 농장도 가고 아이들 데리고 생활사 박물관 민속박물관가는 교육받은 전업주부들도 (아줌마가 그런 뜻이라면 ) 많으니까 말이지요. 사실 A 글은 형이 의도했건 아니건 간에 "식민지 조선식 막모관행 " 행하고, 보고 싶은 현재적 욕망에 아주 폭넓게 열려있는 것도 같습니다 . 정조식과 막모가 뭔지도 모르는 저같은 사람의 지적 빈곤의 유희도 있으니까요. 사족이지만, 네이버에서 정조식을 치면 제법 자세한 하지만 알다가도 모를 설명이 나옵니다. 한데 막모를 치면 북한어로 "허튼 " 라고 간략히 나오더군요. 북조선에서 조선식 농속의 하나인 막모를 " 허튼" 모라고 불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한자가 다를지도 모르겠군요.(한자가 같다면 참으로 재밌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여간 그것을 보고 나니 뭔가 이해의 고리가 꼬여버렸네요.
다시 돌아가서 , 재미나 관심의 문제가 소재나 주제적으로 A 글에 없는 것은 아니지요 . 그런데 뭔가 독자들의 접근에 문제가 있다면 아무래도 **누나가 지적한 부분들이 타당할 합니다 . 학회지에 실릴 글이기 때문에 여러 형식적 "관행의 제약" 있었겠습니다만 , 어쨌든 생각에 이영훈, 박섭등 "닫힌 일반 논리와 적들 " 형의 논리를 알리는 효과와 더불어 형의 대중들- 학회의 있을 동조자들과 잠정적 아줌마 독자들로 이어질- 적극적으로 생산하려는 쥐불놓기 시도가 약하달까요. 그러니까 사실 독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청자의 입장에서 말해 보자면, 식민지 시기 정조식 장려와 막모관행의 충돌이 자체로서 그리고 현재적 이해의 지점에서 결정적인가라는 물음을 안고 빨려들어갈 지점이 강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지요 . 아마도 그것은 제목이 지나치게 서술적인 탓도 얼마간 있는 같습니다. " 사이", "충돌" 지나치게 관계론적인 함의가 내포되어 있어서 저간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요즘말로 "낚시 " 힘든 같네요.


"과문"하고 글도 안읽은 상태에서 선무당 짓을 좀 해보자면,
"농속" 이라는 것은 농업() 관행의 다른 말인가요? 그리고 구체적 표현은 농업기술로 대표되는 것인가요 ?

느낌에 농업기술과 토양 (지리) 대한 관계를 중심으로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 형의 논지에서 핵심적인 같은데요 . 한편에서는 지나치게 농민을 특정기술과 불가분의 관계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농속" 지리 , 역사의 관계로 이해될 여지가 있는 같습니다.

농업기술이 농업기술 자체의 역사와 지리적(토양적?)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아주 흥미로운 관점을 시사하는데요 . 흔히 듣는 말로 , "땅은 거짓말을 안한다 "는데, 그럼 농업기술이 거짓말을 하거나, 그도 아니면 농민이 농업기술을 이해하거나 활용한 것일 텐데 식민지 조선 농민은 토지에 대한 자기 지식을 자원화 있었다는 상황이 결국 막모 잔존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인가요?

그런데 정치적 입장에서 막모의 잔존이 식민지 농업기획 나아가 식민화의 실패의 증거로 말해지는 것인가요? **누나가 정리 글에서 보면 "완전히 식민화 시킬 없는" 이라는 표현이 나오던데요. "식민주의가 식민지를 완전히 식민화 시킬 없는"이란 문구가 의미하는 바를 모르겠습니다. "완전한 식민화" "내선일체" 갖은 것을 의미하는 것도 같은데 , "내선일체" 특수한 식민지 전략으로 이해되는 편이 낫지 않은가요 ?

그리고 이건 상상입니다만 , 제초기 보급 이야기로 보아 오히려 일본의 정조식 보급과 증산 계획 자체의 차질론도 있을 같은데요. 농민의 저항이라기 보다는 말이지요. 아마도 일본 보고서, 자료들은 대개 그런 관점에서 쓰여지지 않았을까도 싶고 하여 오히려 제초작업의 고단함과 번거로움이 (자료에서는 아닌것 같습니다만 ) 정조식을 수용하는데 저항감을 만들었던 것은 아닌가요? 

또 **누나가 정리한 글에 보면 농민의 " 실용적 합리성 "이라는 말이 나오던데요 . 저도 그에 대한 입장은 **누나랑 비슷합니다 . 말이 이상하지만 농민은 실용적일 있지만 합리성은 항상 외부적인 개입에 의한 정당화를 수반하는 아닌가요?  제가 우려하는 것은 어떤 합리적 개인 혹은 합목적적 경제활동에 대한 신화의 부활입니다. 생산의 비합리적 가능성-사실 항상 생산은 그렇습니다만 - 대한 사고폭이 닫히는 느낌이어서 말입니다 .

오랫만에 한글로 글을 썼더니 무지 힘드네요. 미국에서 영어로 글을 써서 글을 못쓰는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글을 원래 쓰는것이었네요.

**누나가 공유해주신 고맙습니다 . 어쨌든 덕에 저도 뭔가를 써야했고 쓰고자 했으니까요.

A형 나중에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겠습니다 . 항상 그렇듯 여러 생각할 여지들을 제공해 주는 글이네요. 생각에 인류학회지 판본으로도 한번 재구성해보심도 괜찮을 같습니다 . 자유롭게 이론적 문제들을 제기해 수도 있을 같은데요. 이야기가 다릅니다만, 인도에서 Green Revolution 이라는 기획의 성패를 두고 현지 학자, 미국, 영국 학자 요즘 말도 많은 재프리 삭스등등해서 이래저래 논쟁들이 오가던데요. 이영훈류의 입장에서 보자면 산미증산계획같은 것이 그런 류의 식민지 기획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도 싶더군요 . 끝까지 사족입니다.


모두들
건강과 건투를 빕니다 .

P.S.

** 허걱, 막상 보낼려고 했더니 A형 장문의 답글을 이미 보내셨군요 .

그냥 개인 소장 하려다가 보냅니다.

제글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봐 주세요..A 답글도 아직 읽은 상태인데 나중에 읽어보겠습니다. 굳이 글에 답글을 달지 않으셔도 됩니다 . **

** 잠깐 읽었는데요 . .. A형은 지리를 기후로 봤던 것이었군요. 글을 읽어봐야할까 봅니다. 저는 토양으로 이해했었습니다만….. 기후로 보는 것이 농속의 입장에서는 훌륭한 관점일 있겠네요. 한데 근대 기상관측이 20 세기 초에 시작되니까 기후 차이에 대한 이해는 얼마간 보정될 있는 것도 아니었을까도 싶은데요 . 저는 자기땅은 자기가 안다 그런 농민과 농토와의 친밀도로 구성된 지식체계의 문제로 이해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