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20대

인터넷 상에서 저조한 투표율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란다.
 
주로 20대의 낮은 투표율을 지적하는 3-40대의 분노가 폭발한 것인가 본데,
재외국민 투표권이 없는 상황에 놓여있는 "기권자"들 중의 하나인 내 입장에서 뭐 할말이 있겠나 싶지만,
어떻든 세대간의 싸움으로 한나라당의 압승과 한국사회의 보수화를 설명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 보인다.

젊은 세대들의 투표 참여는 한국사회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나라에서 "문제적"인 사안이다.
일반적으로 젊은 세대는 진보정치세력의 득표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들 예측 하는데,
그래서 진보는 투표연령을 18살 까지 낮추려고 노력하고 보수는 대개 젊은이들의 투표권한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요즘의 한국사회에서 보자면 그러한 논리가 얼마나 유용한 논리인지 잘 모르겠다.
여러 여론조사를 통해 보면, 20대에서 한나라당의 정당지지율이 50%를 넘는다고 하는데 말이다.
그들의 부모인 50대의 정치적 성향과 거의 일치하는 이들의 "정치 선호도"에 기초한다면,
그들은 독자적인 세대로써 큰 정치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아보인다.
20대에 대한 막연한 "기대"는 분명한 듯 해 보이나, 그들이 독자적인 삶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어떤 존재로 등장하기엔 아직 미흡해 보인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사실 투표를 하던 안하던 적어도 현재는 20대의 역할이 큰 정치적 변화를 가져올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아보인다. 

20대의 삶은 신자유주의적인 일상으로 재편된지 오래다.
대학입학하자 마자 취업, 유학 준비로 영어학원을 전전하는 것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그들의 삶에 유일한 "보루"는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된지도 오래다.
등록금 인상 물가 인상은 그들이 아르바이트로 감당하기 힘든 것이 되었고,
DMV 폰, PSP, 디카, 노트북 등 20대의 "품위유지"를 위한 소비 품목들은 더욱더 늘어났다.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청년학생을 보라"는 식의 20대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이끌어갈 역군임을 강조하는 내러티브도 약화된지 오래다.
교수들은 그들을 "학력저하"의 산 증인으로 몰고, 문화산업 마저도 30-40대의 "구매력"에 호소하는게 더 안정적인 마케팅 전략이다. 20대는 여러 취업학원, 유학원들의 주요 소비자일 뿐 그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지위가 상당기간 약해져 온 것이 사실이다.

한국사회의 진보정치세력은 88만원 세대에 대한 대변자를 자처함에도,
현실적으로 그들의 문제를 어떻게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 나갈 것인가에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사이 20대들에게는 일단 살고는 봐야할 것 아니냐는 패배주의나,
그나마 부모들의 부동산 가격이나 올라주길 바라는 수준에서 자신의 정치의식을 만들어 왔는지도 모른다.

오늘날 20대들에게 386이나 90년대 초반학번들이 그랬던 것과 같은 집단적인 정치적 경험과 "진보의식"의 집단적 세례를 기대하기란 힘들어보인다. 그들에게는 오히려 자신의 삶에서 새롭게 "정치성"을 부여해야하는 과제가 놓여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20대는 87년의 한국사회가 만들어놓은 정치지형을 극복해 내야만 한다는 어떤 정치적 과제로써 존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올바른 것이 아닐까 싶다.

안타깝게도 지난 선거에서 진보정치세력은 새로운 "스타" 정치인 하나를 정치무대에 올리는데 실패했다. 사실 심상정 노회찬이 20대에게 까지 호소력을 갖는 인물이었나에는 여전히 의문의 여지가 남는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홍정욱 같은 후보에게 막판에 밀려버린 노회찬은 그가 패배했기 때문에 더더욱 큰 시사점을 안겨주는 것 같다. 적어도 노회찬이 "반드시"  자신들을 대변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떤식으로든 2.9%의 정당지지율을 획득한 진보신당은 진보정치 "스타"로 일어서보려고 했으나, 아직 그들만의 스타에서 벗어나기엔 어려움이 있음을 확인하고, 평등파는 결국 그들이 저주해 마지 않던 주사파보다  무능력한 세력임을 보여준 것 아니겠는가?

이야기를 좀 돌려보면, 얼마전 뉴욕타임즈에 필라델피아 프라이머리를 앞두고 20대 자녀들이 부모들을 설득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대개 오바바 지지자들인 이 20대들은 심지어 공화당으로 한평생을 살아온 부모들에게 민주당으로 당적을 변경해 오바바에 투표할 것을 요구하고 나서고 있으며 실제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의 정치적 요구에 부흥하고 있다고 한다.  그 기사에서는 이들 20대 젊은유권자들의 새로운 모습이 자신들의 정치적 미래에 대한 가치에대해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을 했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스스로의 "정치적 미래"를 투사할 상징적 정치인, 혹은 "스타"를 갖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해 보인다. 적어도 정치적 이념으로써 대중적 열광을 만들어낼 무엇인가가 불가피하게 필요함은 굳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단지 대운하를 반대한다거나, 이명박 정부의 독주를 막겠다거나 하는 정치적 수사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희망은 반대를 통해서 만들어지기 보다는 그 생산적 힘에 의해서, 노무현 정권 이후에 심각한 정치적 좌절감과 실망감에 빠진 대중을 다시 정치의 장으로 불러내기 위해선 새로운 "꿈"들이 필요하고, 그 속에서만이 20대도 자신의 미래에 대한 주인으로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 된다.

"요즘 애들은 개념없어"는 적어도 한국사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쉽게 터져나와야 할 이야기는 아니지 않겠는가? 요즘 3-40대는 고리타분해라는 대답만 돌려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