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 혹은 미얀마 사태 항의 시위 at D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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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오래 지난 사진이지만, 미얀마(버마)에서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민중들의 투쟁과 유혈 진압사태가 벌어진 직후 듀크대학에서도 버마민중들을 지지하는 집회가 점심시간에 열렸다. 수업때문에 참가는 못했지만, 집회가 끝난 후 참가들이 버마민중 투쟁에 대한 연대를 표하는 정치적 행위로, 학교 교회당 앞에 한국의 세종대왕상 처럼 우뚝 서있는 학교 설립자 듀크의 동상에 버마 승려들이 두르는 빨간 천을 걸쳐 놓았다.
다음날 소리 소문 없이 빨간 천은 사라졌지만, 전세계 민중의 지구적 투쟁은 여전히 어디서건 계속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버마민중의 투쟁을 광주민중 항쟁과 비교하는 몇몇 기사를 읽은 후에도, 왠지 모를 거리감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아웅산 수지에 대한 내 스스로의 의구심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데다가, "민주화"가 "친시장 친미화"로 줄 곧 번역되는 동,남아시아 민주화운동 (네팔이나 인도등지의 마오주의자 투쟁등을 제외하곤)에 대해 느끼는 어떤 딜레마 때문인 것 같다. 생각해 보니 과거 "김대중"이나 "아키노"도 이런 식으로 독해가 되었지 않았을까 싶다.

인류학적으로도 버마인이 다수인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버마에 거주하는 다양한 소수민족들을 생각한다면, 미얀마라는 국호 변경이 가지는 의미가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도 같다. 마치 전두환의 "정의사회구현"이나 "과외금지"라던지 "고교평준화"정책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없는 것 처럼 말이다.
또 상대적으로 미 국방성이던 일부 전지구적 버마 민주화 운동 단체이건 구분없이 아이러니하게 동시에 고집하는 "버마"라는 호칭이 함의하는 바가 무엇일까하고 생각을 해보면 고개가 조금 갸우뚱 해진다. 한반도를 통틀어 "조선"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 만들어내는 비판기능과 정치적 함의의 딜레마가 겹쳐진달까? 

물론 이 모든 것들이, "현실적 고통"과 "고뇌"에서 이탈한 학적 딜레마일 수도 있겠지만, 원거리에서 문제를 접근하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것을 생각한다면 조금 더 진지한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사실 우리는 정작 "무엇"이 운동의 조건이 되고 있으며, 그 속에 얼마나 다양한 "복수적 투쟁"이 존재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 아닌가? 단순히 "민주화"라는 담론 하에서 어떤 운동과 상황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갖는 위험성은 한국의 민중투쟁에서도 드러나는 사실 아니겠는가? 모든 투쟁을 동질화 하려는 시도는 그것이 보수적이건 진보적 외피를 입고 있던 정치적 전유의 한방식일 뿐이란 생각도 든다.

어제 신문에서 미얀마(버마)의 통행금지가 풀렸고, 그것이 실질적인 투쟁의 종료(진압 성공)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도하는 기사를 보았다. 한편, CCTV 9 에서 생중계된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보고 기자회견에서는 노르웨이 기자가 버마사태에서 중국의 역할에 대한 국제적 비난여론이 들끓고 있고, 내년 올림픽을 보이콧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질문인지 협박인지 모를 질문을 했다. 여전히 상황의 복잡성을 단순화를 통해 이해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런데 한국이 88올림픽 할때 외신들의 "개최지 변경"이라는 논리는 오히려  국내에서 성장하고 있던  학생운동 ,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논리로  전도되었던 역사도 있는데...

첨언:  저 "빨간 천"은 뭐라고 부르는 것 일까? 미얀마(버마)에 이리 무지해서야.
         내 주저함은 어찌보면 당연할 듯.

(핸드폰 U-600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