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Fall Semester - Arturo Escobar "Development" Class

학부 전공 수업도 그렇지는 않을 텐데, 25명이 넘는 대학원생이 한 강의실에 자리다툼을 하며 매주 모여들었었다. 지난 학기 UNC에서 수강한 Arturo Escobar 의 "개발" 수업.

이른바 학계 스타의 반열에 오른지 오래 된 Arturo지만 내가 가장 먼저 놀란 것은,  말 그대로 "하해"와 같은 넓은 포용력과 "하회"탈 같은 유머감각이었다.

콜럼비아 출신으로 개발 이론의 선도자로, 미국 인류학계의  무시 못 할 학자가 된 Arturo를 찾아 모여든 학생들은 대개 "그의 명성"에 이끌린 대학원생들. 사실 이 마저도 매우 부러운 일이었는데, 한국의 척박한 인문사회과학 현실에서 보자면, 한 현직 교수의 강의를 듣기 위해 구름처럼 모여든 "대학원생"을 보는 것은 확실히 남의 나라 이야기인 것이 사실인 까닭이다.

학원 선생들을 따라 옮겨다니는 원생들은 있는데, 왜 교수 따라 움직이는 학생들은 없을까?

Thanksgiving day 직전에 있었던 수업에서, 그날 수업 준비를 담당했던 학생들은 아카데미 해체라는 명분하에 파티를 준비했었다. 대학원 수업이라는 딱딱하고 엄숙한 형식을 파괴하고 사람들의 일상과 리듬을 맞춰 함께 배우는 즐거움을 찾아보자는 거창한 기획이었다. 솔직히 나 처럼 아직 "아시아적 학문 패턴"에서 자유롭지 않은 사람에게는 불편하기도 하였으나, 지나고 보니 그 시간에 책 몇 줄 더 "암송"했다고 개인적으로나 지구적으로도 별반 차이를 만들어내지는 못했을 것 같다. 공부하는 사람치곤 너무 반지성적인가?

남미의 사례가 주로 논의되었기 때문에 그 시공간적 거리감과 정서적 괴리감이 단박에 극복되기란 쉽지 않았다. 다만 알투로의 "낙관주의"와 "연대적 낭만주의"에 견주어 본 내 상태는 그나마 그을린 자국이 한 때 아궁이 맛 좀 봤을 거란 추측만 가능케하는 차갑게 식어버린 냄비 같았달까. "개발이 바른길"이라고 외쳤던 덩샤오핑이 틀렸다고 주장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두세기 가까이 지성사에 뿌리를 내린 진화주의적 성장의 나무에, 다른 꽃을 피워 끝내 대지를 바꿔내는 기획은 여전히 무모한 것 같아 보이는데.

수업은 역시, 사고의 새로운 출구를 향해 걷는 자들의 앞에 노둣돌을 흩뿌려 놓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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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uro Escobar:

준법정신이 강한 한 학생이 물었다 "학내에서 (수업중에 강의실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위법이 아닌가요?"
Arturo: (웃으며)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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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계 학생은 어떤 강박증에 이끌려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질문한다.

"이 친구들, 철저한 라깡주의 패미니스트이고자 하면서 동시에 어떻게 맑스주의자라고 우기는 거죠? 기본 세계관이 서로 다른 것 아닌가요? "

Arturo, "그러니까 내가 보기엔...(손꾸락으로 밑줄쫘악 친 곳을 해셕해주며)......"  (한데 무슨 말이었는지 기억 안난다. "동지적 애정"으로 열심히 내게 그 친구들을 변호했던 느낌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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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 내 남색 대화 취향- 나는 낯선여자와 대화가 안된다 문제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진.

왼쪽은 UNC 대학원생 Ricardo 콜롬비아 출신이고, 남미 마초의 외관상 압박 뿐만 아니라 그 열정의 온도자체가 일단 쨉이 안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의 영어는 가끔 나에게 위안을 줬다. ^^ 가운데는 우리과에서 박사과정을 하면서 LAW School 도 함께 다니는 Jason. 그의 열정은 지금까지 내가 본 백인 애들 중 최고다(우리과 한 여학생은 그의 정치적 야망을 몹시 싫어하지만서도). DURHAM CAN (우리의 지역 민중연대와 비슷한 조직)에도 관여하고 DUKE UNION 에도 참여하면서 LATIN 밴드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그래도 나랑 단둘이 커피도 마셔 본 끈끈한 인연이 있고, 한때 파티에서 "로스쿨 다니는 것은 보험용 아니냐"고 덤벼본 적도 있어서 나름 가까운 사이랄까....


* 사진은 방글라데시 출신이라던 UNC 대학원생이 찍어서 보내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