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맞고 죽지 않기 위한 지혜

어제 하루종일 집에서 뒹굴뒹굴 하다가, 늦은 저녁을 먹으러 하우스메이트와 함께 동네 베트남 음식점에 갔다.
 
퍼와 고이 꾸언을 먹으면서, 한국의 늘어난 베트남 음식점에서는 퍼를 파는 게 아니라 말그대로 "쌀 국수"만 파는 것 같다고 의견의 일치를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어차피 가는 길이니 장이나 보고 가자고 전에 한번 언급한 바 있는 한국 마트에 들렀다.
 
시간이 이미 9시쯤 되어 혹시나 문을 닫지 않았을 까 했는데, 용케도 막 문을 닫으려고 채비중이었던 마트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다행"이라고 서로 격려아닌 격려를 하고 장보기를 시작했다.
한데 이미 고기는 떨어지고, 몇몇 냉동식품은 덮개로 냉장고가 덮어져 있어서, 나중에 다시 오기로 하고 가능한 것 몇가지만 카트에 챙겨 넣고 있는데, 어디선가 고성이 들려왔다.

가게 정리중이니 서로 작업 지시를 하는 것이겠지 하고 쇼핑을 계속했다. 덮개를 열어 CJ 토막 꽁치를 끄집어내는 데 성공한 후 막 계산대로 향해서 계산을 시작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마트 한쪽 통로에서 한국 아저씨와 흑인이 서로를 밀치며 튀어나왔다.
고성을 서로 주고 받던가 싶더니 가게를 정리하던 다른 히스패닉 종업원들도 그쪽으로 달려들어 일순간 아수라장이 되었다.

계산대의 히스패닉 아가씨도 상황이 어찌 되어가고 있는지 모르는듯 멍하니 계산을 멈추고, 911에 전화를 해야되는 것 아닌가하고 되려 우리에 물었고, 계산대 앞의 두 동양계 남자도 어정쩡하게 "싸움 구경"을 하고 있었다.
싸움은 좀 더 격해지는 것 같았다. 반항하는 흑인 한명을 네 다섯명의 남자들이 둘러싸고 완력으로 제압을 하려할 수록 그 흑인도 거칠게 반항을 했다. 그 싸움을 이끌고 있던 한국 아저씨가 갑자기 한국 말로 "개새끼가..." 하더니 공포의 팔꿈치 찍기로 바닥에 문제의 흑인을 "때려 눕히는데" 성공했다.
종업원들도 다 그 바닥에 눌려있는 흑인 주위로 몰려들어서, 모든 상황은 그렇게 정리되는가 싶었다.
"자 이제 카드 긁고 집에 가자!"

다시 계산에 집중하려던 찰라, 갑자기 순식간에 흑인을 바닥에 짖누르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사방 팔방으로 손살같이 도망 치는 것 아닌가?
누군가 "총"이라고 말했고, 멀찌감치 카운터에서 카드 긁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우리는 "얼음" 상태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있었다. 한순간에 전세와 상황은 역전이 되었고, 총격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찰라적으로 모두 "정신을 놓고" 있는 사이, 그 흑인은 감시 카메라에 노출 될 것을 우려한 듯 그 틈에도 얼굴을 겉옷으로 가리고 재빨리 달려 가게를 빠져나갔다. 그틈에도 멍하게 서있는 나와 눈 맞춰주는 것은 잊지 않고...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그 누구도 가게 안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를 것이었고,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들을 어떻게 정리할 언어들 마저 잃어버린 듯 했다.
"집에 가자! 도서관에 반납할 책도 있다!"가 그 순간 내게 떠오른 생각의 전부였던 것 같다.
경찰이 도주용의자의 인상착의를 감시카메라 정보를 통해 확인하는 사이,
한동안 20 몇달러를 표시하고 "발광"하고 있던 카운터 계산기는 그제서야
"Approved" 메시지를 내보이고 우릴 계산대에서 해방 시켜줬다.

불과 몇시간 전의 일이지만, 꿈을 꾼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이 삽시간에 일어나고 또 나는 일상으로 돌아와 도서관에 앉아 있다. 그리고 이제서야 수많은 가정법들이 머리속에 떠오른다.

그가 총격을 했었다면 가게 내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가게 내의 단 두명 뿐인 고객이었던 나와 하우스 메이트는 어떻게 되었을까?
사실 내 스스로에게 놀란 것은 그 순간 너무나도 영화적인 현실에 취해 별다른 "공포"를 느껴볼 틈도 없었다는 데 있었다.
911에 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 이 상황을 어찌 리포트 해야하나하는 당황스러움이 조금 일어났을 뿐,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정작 "죽을 지도 모를 상황"에서는 그다지 강렬하게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 
경찰이 도착하고 다른 한명의 히스패닉 종업원 아주머니가 그제서야  긴장이 풀린 듯 눈물을 터트릴 때서야, 나는 "공포의 시간"이 지나갔음을 느낄 따름이었다.

미국에서의 총기사용 범죄는 일상적 위험이다. "총 가질 수 있는 자"는 그들 모두이고 그것을 "사용한 자"만이 상황적으로 등장할 뿐이다. 결국 누구나 총질을 할지도 모를 상황속에서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되도록 "눈깔고, 언성 안높이고" 성질 죽이며 살아가며 "누군가"와 마찰을 피하는 것이 그나마 이 총기 사용 범죄의 희생양이 되는 것을 피하는 방법으로 이야기될 뿐이다.
이른바 자위권을 위해서 월마트에서 총하나를 구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총기 소유 옹호자들은 떠들어 대지만, 그나마도 미국 시민권자들이나 최소 영주권자들이나 가능한 이야기고, 유학생이나 여행자들은 그러니까 그저 "총든 무리"들 속에서 얌전히 죽어지내다 자국으로 돌아가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래서 말해지길, 일반적으로 위험한 구역엔 얼씬도 하지 마라고 강조들 하는데, 대개 이민자들의 식료품 점이나 여러 편의시설이 값싼 임대료를 내는 지역에 몰려 있으니, 먹고 살기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누가 장보다가 소매치기도 아니고, 총맞아 죽을거라고 생각을 하겠냐마는 그런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데가 미국이다. "자유의 나라" 미국엔 "손쉽게 죽일 능력"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으니 결국 죽지 않고 살고 있다는데 감사하며 일요일날 교회에 나가는 것이 생을 축복하는 한 방법이겠구나하고 이해도 된다.

적어도 총 맞고 죽지 않기 위해, 옷속에, 혹은 차안에 총가지고 다니는 이들과 함께 사는 유학생들이 배워야 할 것은 절대 도망가는 사람 쫒아가지 말아야 하고, 남의 싸움에 끼어들지 말아야 하고, 아무리 우리편 쪽수가 많다고 해서 "팔꿈치 찍기"같은 기술을 펼쳐보여선 말아야한다는 것이란 생각이 드니 씁쓸하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총 맞을 가능성을 낮추고 싶거든, 문닫기 직전의 가게에 들어서서 용케 안 늦고 왔다고 웃음 지을 것이 아니라, 계산대에서 기다려야할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남들 장볼때 함께 보는 것이 그나마 생존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시간 조금 기름 조금 아끼려다가 몸에 총구멍 나는 것은 너무 어처구니 없으니 말이다.

"공포의 훈육" 그것이 미국 사회가 매일 같이 일상을 "전장터"로 만들면서 사람들에게 심고 싶은 어떤 생의 논리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