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적 문헌연구 방법

이번 학기 들어 과에서 격주로 "인류학 현지조사 방법"에 대한 집담회를 하는데, 이번 주에는 Rebecca Stein 이 문헌연구 방법에 대한 주제로 한시간 동안 발표를 했다.
레베카는 인류학과에서 가르치지만, 원래 학위는 스탠포드에서 비교문학으로 받았기 때문인지 여타의 인류학 전공자들 보다 확실히 "이론"을 잘 다룬다는 느낌을 받아왔다.

전공이 전공인지라, "문서"다루는 능력이 남들보단 더 나을 것이어서 집담회 시리즈 중에 "문헌연구방법"을 맡은 것이었는데, 역시나 실용적인 측면에서 대단히 명쾌하게 자신의 경험과 이론적 논점들을 펼쳐 냈다. 특히 이론적 논점들의 제시는 "방법"만 있고 "론"이 없는 현지조사 후일담류의 지겨움을 벗어나게 해주고, 전체 강연을 대단히 아카데믹한 것으로 만들어내는 힘을 보여줬다.
내가 레베카의 "까칠함"에 항상 불편해하고 긴장하다가도, 내 논문 커미티라서 얼마간 쫄아있다가도, 결정적으로 인정하게 되는 자리는 그녀의 그런 능력때문인 것 같다.  

가서 부딪쳐 보라는 "맨땅 헤딩식" 서바이벌 연구법이 학문의 연구방법은 아닌게 분명한 만큼, "간증회"식 현지조사 경험담도 한 학문의 연구방법일 수는 없다.
어떻든 현지조사 방법론이라는 별 도움도 안되는 메뉴얼보다는, 실제 경험과 이론적 논의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풀어져 나오는 이야기가 "연구방법론" 습득에 더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간단히 레베카의 강연 내용과 그 중간중간에 떠오른 내 생각들을 요약하자면,

레베카도 Ferguson 이 자신의 책에 썼던 것 처럼, 문헌 혹은 문서자료를 "인공물 Artifact" 로 바라볼 것을 제안했다. 기존의 역사학이나 사회학등등의 학문이 "증거 evidence" 혹은 "자료 data"로 단순히 바라보는 관점과 달리, 인류학적 "문헌연구"는 문헌을 하나의 인위적 생산물로 다루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는 사실은 기본 중에 기본일 것이다.

하나의 문헌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맥락과 사회적 관계들을 드러내는 것이 대개의 경우 문헌자체가 담고 있는 "정보"보다 유의미한 인류학적 연구를 이룬다.
예를들어 국가 통계나 여론조사등등의 자료를 분석할 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제시하는 결과물이 아니라, 어떤 질문들, 항목들이 "셈하여지는 가" 즉 "세는 방식"과 "기록하는 방식"의 형성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게 된다.
문학 비평이나 정신분석학이 그렇듯 즉각적으로 "작가의 의도"를 드러내거나 "숨겨진 사본"을 문헌자료로 부터 추론하는 것보다는 보다 넓은 확장적 맥락 하에 문서를 위치지우는 것이 인류학적 문헌연구가 지향하는 바다.
그런 측면에서 인류학적 문헌연구는 문헌의 새로운 큐레이터쉽을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다.

연구자가 개인적인 연구 주제에 따른 스토리 라인을 설정하고 있다 할지라도, 최초에 문헌자료를 수집할 때 가능한한 폭넓게 "긁어모을"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단지 문헌자료의 다양성만을 의미하는게 하니라, 문헌자료가 가지고 있는 그 나름의 "위계"속의 다양한 층위들을 또한 포괄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경우에 대체로 인류학 연구자에게 특별한 유용성을 가지게 되는 문헌형식들은 "대중문화"내에서 생산되는 유통되는 것들이다. 타블로이드, 찌라시, 심지어 인터넷 게시물들도 "자료의 신빙성"이란 신화에서 벗어나 그 각각의 "문자적 표현"들이 만들어내는 효과들과 상이한 "문헌 형식"들과의 관계들을 분석해 냄으로써 연구 주제를 포괄하는 지도를 그려 내는 랜드마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문헌자료를 다루는데 있어서, 두가지 정도를 특별히 신중히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문헌자료가 "문자성"을 띄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치부하지 말아야 한다.
문자적 표현은 그 자체로 하나의 표현형식이자 사회적 실천이다. 이 "형식"과 "실천"은 푸코와 데리다가 집요하게 논의해 온 바 있다. 특히 푸코의 "What is an author?" 는 이런 관점에서 문헌자료의 집단적 혹은 확장적 "저작권" 혹은 "저술권"을 논의하는데 유용한 지점을 제공할 것이다.

둘째, 문헌자료의 존재방식, 즉 문헌자체의 "물질성"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문서가 어디에 있는가, 문자가 어떤 형식으로 표현되는가는 언어의 공간성과 물질성에 대한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물음들을 제기한다. 일부 사적인 문서들도 어떤 봉투에 들어있는가, 어떻게 관리되는가 등등의 질문들을 놓치고 단지 "문서"만을 획득하려한다면 문헌이 사회적 "인공물"이자 "생산물"로써 가지는 의미와 실천들을 놓치게 될 것이다. 인쇄 형식, 스타일등등도 주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

문헌연구에서 간과하기 쉬운 다른 하나는, 인류학자가 바로 "문헌 생산자"라는 사실이다. 인류학자가 수집한 문헌 자료를 재분류하고, 사본을 만들며, 재배열한다는 사실에 대한 분석을 빠뜨려서는 안될 것이다.
실제 문헌연구에서, 인류학자는 수집자와 생산자라는 이중적인 지위를 갖는다. 여기서 문제적인 것은 이른바 자료의 "소용성"인데, 인류학이 "현지 조사 경험"에 기반한 지식생산이란 원칙을 가지고 있는 한 이 "소용성"은 인류학자의 "의도"로 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인류학자가 "문헌 생산자"라는 사실은 "문헌연구"의 효율성에 방점을 찍기 보다는 역설적으로 "비효율적 문헌연구"가 만들어내는 가능성들을 생산해 내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또하나의 문제가 인류학적 문현연구방법에 등장한다. 그것은 이른바 구술된 문헌자료인 인터뷰 자료들인데, 이것은 즉자적으로 인류학자가 현지에서, 현지로부터 생산한 문헌자료이다. 대체로 이제까지 내가 봐 온 한국인류학의 경향 내에서는 이 "구술된 문헌자료"만이 "순수한" 인류학적 문헌으로 제시되고, 대체로 "활자화된 문헌자료"와 달리 "진정성"과 "신뢰성"을 가진 것으로 너무 쉽게 제시되어져 왔다.  동일한 문제에 대한  상이한 "문헌자료"의 형식을 "비교"하는데 있어서 인류학자가 간과하는 것은 대체로 "스스로의 개입" 다시 말해 질문을 통해 생산한 자료와 다른 자료의 "정보비교"만으로 성급하게 내러티브를 구성하려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문제는 다시금 상이한 authorship 그러니까 "작가"의 문제와 상이한 생산조건을 고려치 않는 경우에 심각해지는 것 같다. "소수자 문학"으로 민족지가 기능하는 것은 그 정치적 기획으로써 타당한 것이겠지만, "소수적" 생산은 그 자체로 학문적 소통성을 획득하지 못하게 되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아마도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서서, 가능한 한 방식은 "존재하는 문헌"들을 "생산된 문헌"들로 즉자적으로 비판하려는 "호기"보다는, "존재하는 문헌"들의 생산구조를 밝히고, 그 구조의 해체지점에서 "발화적 가능성"으로 포획되는 "구술된 문헌"들의 지위를 밝혀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단순히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더라"만으로 "항상 그렇게 쓰여지는 세상"에 맞설 순 없으니 말이다.


* 기타 논점들.

1. 문헌의 역사성에 대한 관심: 기밀 해제 문서. 대중공개문서등의 시기와 사회정치적  맥락.

2. 불일치하는 문서기록들이 만들어내는 "내적 논쟁"들에 대한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