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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1.14 타임즈의 세계 대학 랭킹 발표 2
글
Kaleidoscope speaks.../to Hopping Dummies
2007. 11. 14. 05:39
타임즈의 세계 대학 랭킹 발표
어제 마이클 하트의 수업에서 랑시에르의 "The Ignorant Schoolmaster"에 관한 토론을 지켜 본 뒤끝이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오늘자 학교 신문인 듀크 크로니클에 영국 더 타임즈에서 해마다 발표하는 세계 대학 랭킹에 대한 기사가 났다. 올해 듀크는 13등을 했단다. 아침에 수업에 들어가니 강사가 학생들에게 신문 봤냐고, 어쨌든 우리에겐 매우 "즐거운 기사"라고 코멘트를 했다. 자기가 다니는 혹은 일하고 있는 학교가 나름 "괜찮은" 대학이라고 인정 받는 것을 문제 삼기란 쉽지가 않다. 게다가 유학까지 나온 학생들한테는 학교의 높은 순위와 명성은 스스로의 "자존심" 혹은 "면죄부"를 제공하는데 더할나위 없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게 정말 씁쓸한 자리이다. 도대체 학교에, 이젠 심지어 정부기관에 순위를 매기는 (한국의 도로공사가 공기업 랭킹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 자료를 조작했다는 기사가 얼마전에 났었다) "국제적" 행위를 우리는 그저 지켜만 보고 있을 것인가? 물론 대학에 대한 순위매김이 학교의 연구지원 활동이라던가 커리큘럼에 대한 재고들을 항시적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촉매로써 작용하기도 한다는 긍정적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나, 모든 대학이 "어떻게 순위를 올릴 것인가"라는 평가기준에 발목잡히게 되는 상황은 교육 그자체를 황폐화 시키는 것 아닌가 싶다. 교육의 "질"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에, 너도나도 "실적"을 빙자한 외관단장에만 열을 올릴 것이 아닌가?
한국의 과기대가 미국출신 총장을 영입하고 테뉴어 심사에서 교수들을 대거 탈락시켰던 것은 "철밥통"을 깨뜨린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만, 그 행위를 정당화하는 사례로 들었던 이른바 하버드의 낮은 테뉴어 통과율은 적절한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유명 대학들은 이미 "검증된" 학자들을 독식하고 (서울소재 한국 대학들도 마찬가지고), 대다수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체제로 움직이고 있기에 역설적으로 세계 랭킹에 오르는 미국 대학교육의 질이 전반적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지적해야 옳았다. 테뉴어를 받는데만 혈안이 된 교수들이 강의에 신경을 안쓰고 외부강연, 자기 논문준비에만 혈안이 되어있고, 그에따라 미국의 사립대학 학생들은 갈수록 낮아져가는 강의의 질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학비에 오직 "랭킹"만 부여잡고 지내고 있는 것이 최근의 상황이다. 갈수록 졸업동문들 그리고 부잣집 학생들의 부모들의 관심을 사는데 혈안이 되고 있는 미국 대학들은 바로 이 랭킹을 올려줄 실질적인 힘이 "학연"에서 나온다고 믿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고등교육의 질은 단순히 한교수가 몇편의 연구논문을 양산해 내는가던가, 한편의 연구결과가 얼마나 인용되는지 하는 문제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수는 가장 기본적으로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던가?
물론 분명한 것은 상위권을 이루고 있는 대학들의 도서관이나 여러 교육환경들이 다른 곳들보다 분명 나은 것은 사실이고 랭킹이 높은 곳에 몰려드는 기부금, 발전기금의 흐름을 어찌하긴 어렵지만, 고등교육을 대학의 기업화를 통해 해소하겠다는 서구적인(정확히는 미국적인) 사고자체는 분명 비판 받아 마땅한 것이다.
심지어 이 "랭킹"이라는 것이 발표되는 시기가 대개 서구의 신입생 입학지원시기와 맞물려 있고, 순위를 제외한 자세한 정보는 묻히는 상황에서 피상적으로 제공되는 이런 행위는, "블루칩"에 일단 투자하겠다는식의 교육시장의 주식시장화와 맞물리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다시 돌아가면 랑시에르가 미테랑정부의 교육개혁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인간지성"의 해방이란 문제를 제기한 것 처럼, 한국 대학이 혹은 자신이 다니는 대학이 몇위인가가 중요하기 보다는 어떻게 "지성"의 전당으로써 대학의 자리를 다시 확보 할 것인가의 문제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국의 과기대가 미국출신 총장을 영입하고 테뉴어 심사에서 교수들을 대거 탈락시켰던 것은 "철밥통"을 깨뜨린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만, 그 행위를 정당화하는 사례로 들었던 이른바 하버드의 낮은 테뉴어 통과율은 적절한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유명 대학들은 이미 "검증된" 학자들을 독식하고 (서울소재 한국 대학들도 마찬가지고), 대다수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체제로 움직이고 있기에 역설적으로 세계 랭킹에 오르는 미국 대학교육의 질이 전반적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지적해야 옳았다. 테뉴어를 받는데만 혈안이 된 교수들이 강의에 신경을 안쓰고 외부강연, 자기 논문준비에만 혈안이 되어있고, 그에따라 미국의 사립대학 학생들은 갈수록 낮아져가는 강의의 질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학비에 오직 "랭킹"만 부여잡고 지내고 있는 것이 최근의 상황이다. 갈수록 졸업동문들 그리고 부잣집 학생들의 부모들의 관심을 사는데 혈안이 되고 있는 미국 대학들은 바로 이 랭킹을 올려줄 실질적인 힘이 "학연"에서 나온다고 믿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고등교육의 질은 단순히 한교수가 몇편의 연구논문을 양산해 내는가던가, 한편의 연구결과가 얼마나 인용되는지 하는 문제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수는 가장 기본적으로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던가?
물론 분명한 것은 상위권을 이루고 있는 대학들의 도서관이나 여러 교육환경들이 다른 곳들보다 분명 나은 것은 사실이고 랭킹이 높은 곳에 몰려드는 기부금, 발전기금의 흐름을 어찌하긴 어렵지만, 고등교육을 대학의 기업화를 통해 해소하겠다는 서구적인(정확히는 미국적인) 사고자체는 분명 비판 받아 마땅한 것이다.
심지어 이 "랭킹"이라는 것이 발표되는 시기가 대개 서구의 신입생 입학지원시기와 맞물려 있고, 순위를 제외한 자세한 정보는 묻히는 상황에서 피상적으로 제공되는 이런 행위는, "블루칩"에 일단 투자하겠다는식의 교육시장의 주식시장화와 맞물리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다시 돌아가면 랑시에르가 미테랑정부의 교육개혁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인간지성"의 해방이란 문제를 제기한 것 처럼, 한국 대학이 혹은 자신이 다니는 대학이 몇위인가가 중요하기 보다는 어떻게 "지성"의 전당으로써 대학의 자리를 다시 확보 할 것인가의 문제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출처 "The Chronicle" Duke University
신문기사에 대한 외국 유학생들의 반응을 요약해 보면, "어 근데, 스탠포드는?" "임페리얼 칼리지는 어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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