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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10 "우리동네에 지하철 역이 생겨서 문제가 많아요" - 대중교통망 확충을 거부하는 미국인들. 2
글
Portraits of Kaleidoscope/In the Empire State
2008. 1. 10. 17:09
"우리동네에 지하철 역이 생겨서 문제가 많아요" - 대중교통망 확충을 거부하는 미국인들.
쓰려던 글이니 마무리를 하는게 나을 듯 싶다.
새해 다짐 하나, "오늘 쓸 글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신선도가 떨어져, "쓰고 싶던"에서 "싶던"이 말라 비틀어지기 쉽상이다.
아래글은 2007년 12월 5일날 쓰다 만 것이었다.
========
워싱턴 DC에서 열린 2007년 미국 인류학회에 "다녀"왔다.
말이 학회에 간 것이지 사실 밀린페이퍼 때문에 호텔방에 스스로를 유폐시키고 정작 학회는 한 세션밖에 들어가 보지 못 했다. 내가 발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듣고 싶었던 세션이 있었던 것도 아닌 채 "기사"로 간 것이기도 했었으니까 처음 부터 어떤 핑계거리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모두들 학회 발표장을 부지런히 들락거리고 있었을 시간에, 나는 호텔방에서 정작 쓰려던 글은 한줄도 못쓰고 클릭질만 하면서, "비싼" 하루를 어이없이 흘려 보내고 있었다.
그날 학회가 다 끝난 저녁시간, 학회를 포기한 내가 그제서야 사람들 틈에 섞여 "만사를 포기한 채" 간 곳이, 스탠포드 인류학과 파티였다. 내게 주어진 "기사업무"라도 태업을 안해야 겠다는 강박이 갑자기 생겨났달까, 어차피 워드 화면 대신 네이버 검색창에 커서가 깜박이는 노트북은 차라리 사람들이 보기전에 접는게 덜 쪽팔리는 것이기도 했다.
파티는 워싱턴DC를 바로 벗어난 메릴랜드의 한 주택가서 열렸는데, 파티 하우스를 못 찾고 헤매는 통에 "기사"로써 역할도 영 쉬원치 않았다. 다음에 "더램에 배 들어오면" 꼭 GPS Navigation 를 사던가 해야지...
도대체 내가 뭐하러 워싱턴까지 왔을까 하며, 스스로를 자학하며 따라갔던 그 파티에서, 호스트인 모라네 엄마와 나눴던 대화 내용은 돌아오는 내내 곱씹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그나마 소득이라면 소득이라고 해야 할 듯. 생각할 거리 하나는 가져왔으니.
모라 엄마는 생물을 가르치다 최근에는 부동산 에이전트로 일하고 있단다.
그래선지 낯가리고 어설픈 영어밖에 구사하지 못하는 나에게도 거리낌없이 친절하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녀의 지난 베트남 여행을 화두삼아 이야기하다가, 운전하고 오면서 동네 찾기가 어려웠다는 둥, 집이 참 예쁘다는 둥 하는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는데,
모라엄마 왈, 동네 환경이 예전같지 않단다.
그 주된 이유가 자기가 사는 동네에 워싱턴 DC까지 이어지는 지하철 역이 생긴 뒤로 동네의 안전이 위태로워졌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요즘은 개를 데리고 산보도 멀리 못나가고 해가 떨어지면 집밖으로 잘 나가지도 못한다고도 했다. 지하철이 생기니까 아무나 지하철 타고 자기 동네까지 와서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게 되었다는 불평이었다.
모라엄마의 이 "뜬금없는" 말은,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에서 젖어있던 내게 저어기 충격적이었다.
없는 지하철 역도 곧 생긴다고 광고하고, 입주자들에게 축지법을 가르쳐 줄 요량인지 "지하철 역 도보 10분 이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부동산 업자들이 "수도권"에 넘쳐나는데, 정작 미국의 "수도권"에 사는 모라엄마는 대중교통망 확충에 대해 "동네 못 살게 되었다고"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미국사람들은 다 차를 몰고 다닌다는 개도국 신민의 아메리칸 드림은 어느새 차없이 살기 힘든 미국이 되어가던 차였는데, 그러고 보니 차없이 살기 힘든 미국은 차 없는 자에 대한 불안과 공포, 그리고 증오에도 얼마간 기초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운전하다 심장마비로 사고를 일으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넘쳐나는데도, 대중교통수단 확충 계획을 "예산낭비"라고 공격하고, "행복추구권"을 박탈한다며 그런 "이동권"은 없으니만 못하다고 주장하는 미국적 논리의 이면에는 "이방인"에 대한 적대감, "뚜벅이"에 대한 사회적 멸시가 놓여 있다고 생각하니 끔직해 졌다.(사실 서울의 로데오도 지하철 역과 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서울의 "럭셔리 지구"로 독립적 지위를 누리기도 했었다. "개나 소나" 다 와서 물버렸다고들 하던 시기에, 트레이닝복 패션으로 거주민과 어설픈 외지인을 구별해내기도 했었고.요즘은 어찌들 되가고 있나?) 어떻든 미국의 반"역세권" 논리와 전혀다른 한국의 "역세권" 투기 열광을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데 그런 단순비교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주거 커뮤니티가 해체되고 모두가 익명성을 가진 채 공동주거를 하는 아파트 중심의 한국적 도시 생활은 주거환경이라는게 "학군"과 "투기"라는 두가지 카테고리로만 지나치게 집중되는 문제가 있고, 미국은 계층적, 인종적 극단적 분리를 바탕으로 한 커뮤니티 건설이 일반화 되어 다른 수준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일 테니 말이다. 사실 학군이나 투기는 미국적인 주거공간 구조에서 보자면 이슈가 아닌 "자연화"된 현상이 된 측면도 없지 않다. 다른 한편에선 한국 강남만 보자해도 이미 "대치역"이나 몇몇 강남 주거단지 근처 역들은 다른 역들과 비교해서 썰렁하기 그지 없으니 한국의 일부도 미국적 모델을 이미 따르고 있는 것도 같다.
곰곰히 생각하다 보니, 조금 뜬금없는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어렸을 적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시던 시골 마을에 갈 때마다 우리 아버지 또래의 어르신들이 항상 마을의 낙후성을 푸념할 때 등장하던 얘기가 있다.
마을을 가로 지르던 고속도로가 건설 될 즈음에, 고속도로 진입로를 마을 어귀에 내겠다던 정부의 계획을 당시 마을의 "큰 어르신들"이 한사코 반대를 했고, 그 때문에 그 마을이 결국은 한국의 급격한 근대화 드라이브에서 소외된 산골 마을로 전락했다는 푸념을 귀동냥 하곤 했었다.
어린 나는 시골가는 지루한 길을 한시간이나 더 걸리게 만들어 놓은 그 "시대에 뒤떨어진" 어르신들이 도통 이해가 안가고 원망스러웠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 어르신들이 하셨다던 "고속도로 진입로가 나면 마을이 못 씨게 되아부러"라는 이야기가 모라엄마의 불안과는 그 내용은 다를지언정 대중교통망의 근대적 확충에 관계하는 어떤 불안의 기표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함께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것 같다.
물론 그 시절 어르신들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신작로"가 결국은 수탈의 통로밖에는 안되었다는 경험을 가지고 계신 것이었고, 교통의 요지가 되어 급격한 "흥망성쇠사"를 써가던 숱한 농촌 마을들을 목도하고 계셨을 것이기에 "대중교통사"의 수준에서는 전혀 다른 수준의 이해가 필요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파농은 어디선가 고국 알제리의 상황을 논하면서, 주민들이 스스로 원하고 결정하여 건설하지 않는다면, 강에 다리를 "놓아주는"것도 또다른 폭력이다고 했었던 것 같다.
"접속"과 "이동"의 강박을 생산해 낸 것은 사실 지극히 근대적이고 식민주의적인 현상이었던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한국의 역세권 열광에 파묻혀, "대중 교통망 확충은 무조건 좋다"는 단순한 논리에 내가 상당기간 빠져있지 않았나 반성하게 된다.
......
사족하나 사실 오늘날 대중교통망 확충은 환경 그자체에도 복잡한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몇년 전 우리 할머니께서 차타고 가시면서 새 고속도로 준공 현수막을 보시면서 하시던 말은 어쩌면 지극히 정당한 우려일 것이다.
"이 놈의 나라는 도로 만들다가 아무 땅도 안남아 나것서야"
우리는 어쩌면 그와 같은 감각을 한국의 도시적 일상에서 종종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게다가 이젠 경부운하 파겠다니 바야흐로 "불도저의 재림" 시대가 된 듯도 한데, 정주영의 경부고속도로 복층화 프로젝트보다 이건 또 얼마나 과감한 계획인가?
새해 다짐 하나, "오늘 쓸 글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신선도가 떨어져, "쓰고 싶던"에서 "싶던"이 말라 비틀어지기 쉽상이다.
아래글은 2007년 12월 5일날 쓰다 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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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에서 열린 2007년 미국 인류학회에 "다녀"왔다.
말이 학회에 간 것이지 사실 밀린페이퍼 때문에 호텔방에 스스로를 유폐시키고 정작 학회는 한 세션밖에 들어가 보지 못 했다. 내가 발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듣고 싶었던 세션이 있었던 것도 아닌 채 "기사"로 간 것이기도 했었으니까 처음 부터 어떤 핑계거리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모두들 학회 발표장을 부지런히 들락거리고 있었을 시간에, 나는 호텔방에서 정작 쓰려던 글은 한줄도 못쓰고 클릭질만 하면서, "비싼" 하루를 어이없이 흘려 보내고 있었다.
그날 학회가 다 끝난 저녁시간, 학회를 포기한 내가 그제서야 사람들 틈에 섞여 "만사를 포기한 채" 간 곳이, 스탠포드 인류학과 파티였다. 내게 주어진 "기사업무"라도 태업을 안해야 겠다는 강박이 갑자기 생겨났달까, 어차피 워드 화면 대신 네이버 검색창에 커서가 깜박이는 노트북은 차라리 사람들이 보기전에 접는게 덜 쪽팔리는 것이기도 했다.
파티는 워싱턴DC를 바로 벗어난 메릴랜드의 한 주택가서 열렸는데, 파티 하우스를 못 찾고 헤매는 통에 "기사"로써 역할도 영 쉬원치 않았다. 다음에 "더램에 배 들어오면" 꼭 GPS Navigation 를 사던가 해야지...
도대체 내가 뭐하러 워싱턴까지 왔을까 하며, 스스로를 자학하며 따라갔던 그 파티에서, 호스트인 모라네 엄마와 나눴던 대화 내용은 돌아오는 내내 곱씹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그나마 소득이라면 소득이라고 해야 할 듯. 생각할 거리 하나는 가져왔으니.
모라 엄마는 생물을 가르치다 최근에는 부동산 에이전트로 일하고 있단다.
그래선지 낯가리고 어설픈 영어밖에 구사하지 못하는 나에게도 거리낌없이 친절하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녀의 지난 베트남 여행을 화두삼아 이야기하다가, 운전하고 오면서 동네 찾기가 어려웠다는 둥, 집이 참 예쁘다는 둥 하는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는데,
모라엄마 왈, 동네 환경이 예전같지 않단다.
그 주된 이유가 자기가 사는 동네에 워싱턴 DC까지 이어지는 지하철 역이 생긴 뒤로 동네의 안전이 위태로워졌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요즘은 개를 데리고 산보도 멀리 못나가고 해가 떨어지면 집밖으로 잘 나가지도 못한다고도 했다. 지하철이 생기니까 아무나 지하철 타고 자기 동네까지 와서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게 되었다는 불평이었다.
모라엄마의 이 "뜬금없는" 말은,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에서 젖어있던 내게 저어기 충격적이었다.
없는 지하철 역도 곧 생긴다고 광고하고, 입주자들에게 축지법을 가르쳐 줄 요량인지 "지하철 역 도보 10분 이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부동산 업자들이 "수도권"에 넘쳐나는데, 정작 미국의 "수도권"에 사는 모라엄마는 대중교통망 확충에 대해 "동네 못 살게 되었다고"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미국사람들은 다 차를 몰고 다닌다는 개도국 신민의 아메리칸 드림은 어느새 차없이 살기 힘든 미국이 되어가던 차였는데, 그러고 보니 차없이 살기 힘든 미국은 차 없는 자에 대한 불안과 공포, 그리고 증오에도 얼마간 기초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운전하다 심장마비로 사고를 일으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넘쳐나는데도, 대중교통수단 확충 계획을 "예산낭비"라고 공격하고, "행복추구권"을 박탈한다며 그런 "이동권"은 없으니만 못하다고 주장하는 미국적 논리의 이면에는 "이방인"에 대한 적대감, "뚜벅이"에 대한 사회적 멸시가 놓여 있다고 생각하니 끔직해 졌다.(사실 서울의 로데오도 지하철 역과 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서울의 "럭셔리 지구"로 독립적 지위를 누리기도 했었다. "개나 소나" 다 와서 물버렸다고들 하던 시기에, 트레이닝복 패션으로 거주민과 어설픈 외지인을 구별해내기도 했었고.요즘은 어찌들 되가고 있나?) 어떻든 미국의 반"역세권" 논리와 전혀다른 한국의 "역세권" 투기 열광을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데 그런 단순비교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주거 커뮤니티가 해체되고 모두가 익명성을 가진 채 공동주거를 하는 아파트 중심의 한국적 도시 생활은 주거환경이라는게 "학군"과 "투기"라는 두가지 카테고리로만 지나치게 집중되는 문제가 있고, 미국은 계층적, 인종적 극단적 분리를 바탕으로 한 커뮤니티 건설이 일반화 되어 다른 수준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일 테니 말이다. 사실 학군이나 투기는 미국적인 주거공간 구조에서 보자면 이슈가 아닌 "자연화"된 현상이 된 측면도 없지 않다. 다른 한편에선 한국 강남만 보자해도 이미 "대치역"이나 몇몇 강남 주거단지 근처 역들은 다른 역들과 비교해서 썰렁하기 그지 없으니 한국의 일부도 미국적 모델을 이미 따르고 있는 것도 같다.
곰곰히 생각하다 보니, 조금 뜬금없는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어렸을 적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시던 시골 마을에 갈 때마다 우리 아버지 또래의 어르신들이 항상 마을의 낙후성을 푸념할 때 등장하던 얘기가 있다.
마을을 가로 지르던 고속도로가 건설 될 즈음에, 고속도로 진입로를 마을 어귀에 내겠다던 정부의 계획을 당시 마을의 "큰 어르신들"이 한사코 반대를 했고, 그 때문에 그 마을이 결국은 한국의 급격한 근대화 드라이브에서 소외된 산골 마을로 전락했다는 푸념을 귀동냥 하곤 했었다.
어린 나는 시골가는 지루한 길을 한시간이나 더 걸리게 만들어 놓은 그 "시대에 뒤떨어진" 어르신들이 도통 이해가 안가고 원망스러웠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 어르신들이 하셨다던 "고속도로 진입로가 나면 마을이 못 씨게 되아부러"라는 이야기가 모라엄마의 불안과는 그 내용은 다를지언정 대중교통망의 근대적 확충에 관계하는 어떤 불안의 기표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함께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것 같다.
물론 그 시절 어르신들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신작로"가 결국은 수탈의 통로밖에는 안되었다는 경험을 가지고 계신 것이었고, 교통의 요지가 되어 급격한 "흥망성쇠사"를 써가던 숱한 농촌 마을들을 목도하고 계셨을 것이기에 "대중교통사"의 수준에서는 전혀 다른 수준의 이해가 필요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파농은 어디선가 고국 알제리의 상황을 논하면서, 주민들이 스스로 원하고 결정하여 건설하지 않는다면, 강에 다리를 "놓아주는"것도 또다른 폭력이다고 했었던 것 같다.
"접속"과 "이동"의 강박을 생산해 낸 것은 사실 지극히 근대적이고 식민주의적인 현상이었던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한국의 역세권 열광에 파묻혀, "대중 교통망 확충은 무조건 좋다"는 단순한 논리에 내가 상당기간 빠져있지 않았나 반성하게 된다.
......
사족하나 사실 오늘날 대중교통망 확충은 환경 그자체에도 복잡한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몇년 전 우리 할머니께서 차타고 가시면서 새 고속도로 준공 현수막을 보시면서 하시던 말은 어쩌면 지극히 정당한 우려일 것이다.
"이 놈의 나라는 도로 만들다가 아무 땅도 안남아 나것서야"
우리는 어쩌면 그와 같은 감각을 한국의 도시적 일상에서 종종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게다가 이젠 경부운하 파겠다니 바야흐로 "불도저의 재림" 시대가 된 듯도 한데, 정주영의 경부고속도로 복층화 프로젝트보다 이건 또 얼마나 과감한 계획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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